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뉴스1 DB)© 뉴스1
3월 27일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서 한진칼의 운명이 걸린 승부가 열립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한진칼은 현재 조 회장 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의 ‘3자연합’의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입니다. 조 회장 측은 카카오를 포함하면 우호지분 38.25%를, 3자연합은 우호지분 31.98%를 가지고 있습니다. 6.27% 포인트 차입니다.
차이가 크지 않기에 양측은 지분 1%가 너무나도 아쉽고 또 긴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진칼에서는 양측의 운명을 가를지도 모르는 2개의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대한항공 자가보험과 사우회가 보유한 지분 3.7% 그리고 3자연합 측 반도건설이 보유한 3.2%에 대한 의결권 인정 여부 소송입니다. 의결권은 말 그대로 주주총회에 올라온 안건들에 대해서 찬반 투표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합니다. 의결권을 인정받으면 주총에서 힘을 쓸 수가 있고, 의결권을 인정받지 못하면 주총에서 표 대결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도대체 저 지분이 뭐가 문제인 걸까요?
●“자사보험 및 사우회 지분 3.7% 의결권 제한해야”
대한항공 자가보험은 1984년 대한항공 직원들이 의료비 지원을 위한 상호 부조 목적으로 금원을 출연해 설립됐습니다. 사우회도 임직원 등의 복리 증진을 위해 설립된 단체로 회사가 설립 당시 기본 자금을 출자했습니다. 자가보험의 경우 자산 운용 과정에서 1997년부터 대한항공 주식을 취득했고 2013년엔 대한항공의 인적분할 당시 보유했던 대한항공 주식을 한진칼 주식으로 전환합니다.
3자 연합이 문제를 삼는 것 중 하나는 대한항공 자가보험이 2014년과 2016년 추가로 한진칼 지분을 획득하는 과정입니다. 자가보험은 2014년 주식 교환을 통해 한진칼 주식 약 100만 주를 매입합니다. 그런데 당시 자가보험 운영규정에 따르면 “자가보험 기금은 정기성예금 및 국공채, 신탁형 수익증권의 매입, 자사주 취득 등으로 운영한다”고 돼 있습니다. 당시 규정을 놓고 보면 대한항공 주식이 아닌 다른 법인인 한진칼 주식을 살 수 없다는 것이 3자 연합의 주장인거죠.
대한항공 자가보험 측은 “규정에 자사주 취득 ‘등’으로 운영한다고 돼 있다”며 “‘등’ 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포괄적으로 한진칼 주식 매입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대한항공 자가보험은 2016년 5월 해당 규정을 “자가보험 기금은 유가 증권(국/공채, 회사채 주식, 신착형 수익증권 등) 매입 등으로 운영한다”고 수정합니다. 대한항공 자가보험은 “기존 규정으로도 충분히 한진칼 주식을 살 수 있었지만, 규정을 수정한 것은 ‘등’ 이라는 표현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3자연합은 또 “자가보험과 사우회가 한진칼 지분을 살 때 직원들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회장이 임명한 임원들이 결재를 한 뒤 지분을 매입했다”며 “그룹 총수의 영향력 안에 있는 지분이므로 특수관계인에 해당하지만, 조 회장이 이를 특수관계인으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조 회장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에 따라 특수관계인으로 자가보험 및 사우회 주식을 금융 당국에 보고해야 함에도 이를 누락했고, 이는 법률 위반이기에 의결권 행사가 금지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원들 직접 투표하겠다는 한진칼
3자 연합이 가처분신청을 하자 대한항공 자가보험은 27일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여부를 임직원이 직접 선택하게 하는 ‘불통일행사’로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즉, 전자투표 시스템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주총 안건마다 직접 찬반 의견을 묻고, 그 비율에 따라서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안건에 대해 직원들의 찬반이 5:5로 갈리면, 지분 3.7%도 5:5로 나눠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이야깁니다. 그러자 대한항공 일부 노동조합과 간부, 임원들은 직원들에게 사안에 따라 조 회장에게 유리한 건 ‘찬성’ 3자연합이 주장하는 안건에 대해서는 ‘반대’ 투표를 하라고 독려까지 하고 있습니다.
자가보험은 “지난해부터 이와 같은 전자투표 시스템을 활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가처분신청 법원 심리에서 문제가 됐습니다. 대표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실시한 전자투표에는 직원 약 1만8000명 중 1000여 명만 참여를 했습니다. 약 6% 정도만 참여를 한 것입니다. 자가보험이 하겠다고 하는 전자투표 규정에는 정족수 규정이 없습니다. 직원 10명이 참여를 해서, 찬성이 과반을 넘어도 3.7%는 조 회장을 지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번 가처분신청의 결과는 25일 쯤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또 자가보험 등의 주식 보고 의무 위반과 관련해서는 3자연합이 19일에 금융감독원에 형사처벌 및 행정제재 요청까지 했습니다.
● 3자연합 금감원에 조사 요청한 한진칼
3자연합에 질세라 한진칼도 16일 금융감독원에 3자연합이 자본시장법 위반을 했다며 조사요청을 했습니다. 3자연합의 반도건설이 처음엔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로 공시를 했다가 ‘경영참가목적’ 바꾸기 전에,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요구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게 실제로 허위보고면 자본시장법 위반이므로 2020년 1월 10일 기준으로 반도건설 측이 보유한 지분 8.2% 중 5%를 초과한 3.2%에 대해서 ‘주식처분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이 경우 반도건설의 의결권이 제한되고 3자연합 측 지분은 20%대로 내려갑니다.
재미있는 건 3자연합 측이 이미“반도건설이 가지고 있는 8.2%의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주총에서 행사하게 해달라”는 가처분신청서를 3월 3일 법원에 제출했다는 겁니다. 한진칼의 공격이 있기 전 미리 방어를 한 셈입니다. 이 가처분신청 결과 또한 25일쯤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3자연합 측의 지분은 31.98%인데, 여기서 3.2%가 날아가 버린다면, 조 회장과의 격차가(자가보험 및 사우회 주식 3.7%를 인정받는 경우) 9.47% 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물론 국민연금(2.9%)의 향방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이번 대결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오너가가 포함된 최대주주의 반란으로 그룹 총수의 리더십이 교체될지 아닐지, 실패할 경우 3자연합은 지속 연합할 수 있을지, 법을 고쳐 기업 경영권에 일일이 간섭할 수 있게 된 국민연금은 어떤 선택을 할지 등등이 모두 관전 포인트입니다. ‘기존 경영진을 지키자’는 조 회장측과 ‘기존 경영진을 바꿔보자’는 3자연합의 1차 전쟁은 3월 27일 결판이 납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