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에 맺혀 글썽이는 이슬방울
위에 뛰어내리는 햇살
위에 포개어지는 새소리, 위에
아득한 허공.
위에 뛰어내리는 햇살
위에 포개어지는 새소리, 위에
아득한 허공.
…(중략)…
소나무 가지에 매달리는 새소리,
햇살들이 곤두박질하는 바위 위 풀잎에
내가 글썽이며 맺혀 있는 이슬방울.
인터넷 세상이 열려서 우리는 보고 싶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말일까. 과연 나는 내가 찾던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보고 싶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빅데이터는 나의 취향을 나에게 강요하고, 과도한 정보는 나의 뇌 용량을 지나치게 차지하고 있다. 가끔 내가 데이터인지 데이터가 나인지 의심스럽다. 이럴 때는 잠시 리셋이 필요하다. 모든 창을 다 닫고, 모든 검색어를 다 내려놓고, 잠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고요한 나의 정신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읽는 시가 있다. 바로 이태수 시인의 ‘이슬방울’이다.
시에 나오는 세계는 소리 정보나 문자 정보로 가득 차 있지 않다. 비어 있는 편에 가깝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노력도 필요 없다. 그저 이 시를 천천히 따라 읽으면 된다. 따라 읽다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듯이 시의 묘미는 구조에 있다. 시는 지상의 가장 낮은 곳인 풀잎의 이슬방울에서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햇살, 새소리, 허공 순으로 시는 상승한다. 시는 잔잔해 보이지만 상승의 속도는 놀랍다. 끝까지 올라간 다음에 시는 다시 구름을 거쳐 소나무, 바위, 나에게로 하강한다. 독자는 이 상승과 하강을 거쳐 지구의 저만치를 주유하고 온 듯한 현기증을 느낀다. 우리의 정신은 시를 따라 먼 여행을 하고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온 우리는 이전의 우리와는 다르다. 눈을 감고 즐겨보자. 이슬방울 같은 나는, 우리는 정말 누구인가.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