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주토피아
이정향 영화감독
주토피아의 포유류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건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인류도 체질이 한 종류였다면 중세 흑사병 때 멸종됐을지도 모른다. 태풍이 휩쓸어도 여러 종류의 나무가 섞인 숲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영화 속 국민가수인 가젤의 “두려움 때문에 서로에게 등 돌리지 마세요”라는 호소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희한한 일상을 겪고 있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위험에 빠뜨리는 모순, 가까이 다가갈수록 민폐와 증오의 대상이 된다. 나도 처음엔 아무도 믿지 말자는 생각으로 모두를 의심하고 조심했다. 스트레스가 대단했다. 지친 나머지, 남이 아닌 내가 감염자라는 생각으로 바꿨다. 그러고 나니, 같은 조심을 해도 나보다는 남을 위해서 하는 배려가 됐고, 스트레스도 덜했다. 온 세상이 적 같고 두려웠는데, 입장을 바꿨더니 증오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넉넉해졌다. 한 명이 온 세상을 병들게 한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조심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요즘처럼 그날이 그날 같던 일상이 눈물나게 그리운 적이 없다. 반가운 이의 손을 덥석 잡고,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침을 튀겨가며 수다를 떨던 그 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어 마음이 약해질 때면 2003년 사스 때 기사들을 찾아 읽는다. 그때도 심각했지만 바이러스가 싫증이 난 듯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신종 코로나는 인간들을 등지게 만드는 것 같지만,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하라는 신의 회초리일지 모른다. 정치적 계산 없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부와, 안일함과 이기심을 접고 남을 배려하는 국민들만이 이 싸움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