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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발자국]‘착수’

입력 | 2020-03-23 03:00:00


서장원 2020년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등단을 하고 나서 글쓰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당선작이 발표된 후 인터넷 공간 여기저기에 들락거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독자들이 내 작품을 좋게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더 이상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소설을 잘 쓰고 싶었다. 레이먼드 카버만큼 쓰고 싶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만큼 쓰고 싶었다. 이 말은 카버처럼, 하이스미스처럼 쓰고 싶었다는 말과는 다르다. 나는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는 운동선수의 마음가짐으로 책상 앞에 앉은 날이 많았다. 나는 더 좋은 글을 성취하고, 글로써 인정받는 데에 관심을 두었다. 당선 소식을 들은 뒤 편하게 잠을 자본 날이 많지 않은데, 아마 그 이유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라는 일본 바둑기사는 바둑을 두면서도 아름다움을 따진다고 한다. 대국(對局)에서 지더라도 자신의 눈에 아름답지 않은 곳에는 돌을 놓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두 가지 점에서 놀라웠다. 우선은 프로 바둑기사가 불리한 수를 감수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둑판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바둑이라면 아주 기본적인 규칙만 아는 나는, 바둑판 위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한다. 검고 흰 돌이 놓이는 방식이야 내게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희고 검은 돌밖에 없는 바둑판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승부 이상의 가치를 부여했다.

앞으로는 오타케 히데오가 패배할 것을 알고도 돌을 놓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 좋은 이야기에 대해 고민한 만큼, 문장과 언어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다. 운동선수로서의 자의식을 조금 내려놓고 싶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잘 쓰는 것보다 어떻게 쓰는지 무엇을 쓰는지에 더 관심을 가져보자고, 취향에 맞지 않는다며 미뤄둔 소설을 읽고, 읽지 않던 시를 읽어보자고 두루뭉술하게 생각 중이다.

어쩌면 소설을 쓰기 시작하며 진작 했어야 할 고민을 이제야 시작한 것 같다. 다만 등단은 시작점에 서는 일이니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려 한다. 바둑에서 판 위에 돌을 놓는 일을 착수(着手)라 부른다고 들었다. 나는 이제 좋은 소설에 착수하려고 한다. 오타케 히데오에게 타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던 것처럼, 언젠가 나도 그런 아름다운 문장과 행간을 가졌으면 한다.
 
서장원 2020년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