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회에서 진행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최강욱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한상준 정치부 기자
지난달 초 청와대 참모 A는 농담처럼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 말이 진짜 현실이 될 거라고는.
4·15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인 1월 16일이 임박해 비로소 청와대 내부의 출마자 교통정리가 끝났다. 아니, 대다수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A의 농담은 적중했다. 의석수 129석의 원내 제1당인 집권 여당은 여전히 건재하고, 숱한 논란 끝에 더불어시민당이라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까지 만들었다. 그런데도 이에 더해 비례대표용 친문 정당인 열린민주당이 탄생했다.
이 친문 정당에 최강욱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이 황급히 사표를 내고 합류했다. 열린민주당 남자 비례대표 후보 9명 중 청와대 출신은 최 전 비서관과 김의겸 전 대변인까지 2명이다.
총선 출마의 진짜 막차를 탄 최 전 비서관이 사표를 낸 16일은 비례대표 출마를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 마감일이었다. 당연히 비례대표 출마를 위해 사표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최 전 비서관은 청와대 관계자에게 “명확하게 (아니라고) 끊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최 전 비서관은 출마가 아니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 준비 때문에 사표를 낸 것”이라고 설명한 이유다. 물론 채 일주일도 안 돼 거짓말로 밝혀졌지만.
또 최 전 비서관과 김 전 대변인 모두 열린민주당에 합류하며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외쳤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모든 것을 던지겠다는 그 충절이 진심이라면, 남아 있는 청와대 인사들이 뜨거운 박수로 응원을 보내야 할 터인데 실제 반응은 다르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열린민주당에 대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선거에 관여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이유다.
열린민주당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고 있다. 한 여당 의원은 “전직 청와대 참모들을 앞세워 청와대의 어쩔 수 없는 침묵을 마치 열린민주당에 대한 암묵적 지지로 해석하고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열린민주당은 두 사람을 간판으로 “민주당과 우리는 형제”라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이런 열린민주당을 어찌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자연히 야당은 “미리 다 조율해 놓고 청와대와 민주당, 열린민주당이 벌이는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고 의심한다. 시작부터 잘못 끼워진 공직선거법 개정과, 의석수에 눈이 멀어 그 맹점을 뻔뻔하게 파고든 정당들에 더해 두 전직 청와대 참모까지 가세하면서 유권자들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정치 현실을 바꾸려면 정당의 무원칙을 바꿔야 한다. 원칙에 대해서는 타협 없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최 전 비서관과 김 전 대변인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꼼수의 주역을 자처했다.
전현직 참모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원칙주의자 문재인’ 곁에서 대체 무엇을 보고 배운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두 사람은 과연 문 대통령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용하고 있는 것인가.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