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의료진 밤샘사투 마음 알지만… CDC는 하루 최대 12시간 이상 못하게 해”[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입력 | 2020-03-24 03:00:00

탁상우 전 美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역학조사관




코로나19 사태로 현재 가동 중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내 긴급상황실(EOC) 모습. 탁상우 전 CDC 역학조사관은 “CDC 긴급상황실은 위기 상황에만 인력과 기능이 대폭 확대되는 대단히 유연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CDC 제공

이진구 논설위원

《감염병 발생 때마다 인용되는 말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이다. 지난해 예산만 73억 달러(약 9조3000억 원)에 이르는, 전 세계 공중보건 기구의 모델.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에도 미국 국민의 75%가 CDC를 신뢰했다(트럼프는 42%). 탁상우 전 CDC 역학조사관(52·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부교수)은 “CDC는 간부 대부분이 역학조사관 출신이고, 위기에도 현상에만 급급하지 않고 국가 보건 기능 전체를 보고 대응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미 매사추세츠대에서 건강환경 분야 박사를 취득한 뒤 CDC에서 6년, 미 국방부 역학조사관 등으로 5년간 일했다.》

―감염병 위기를 빨리 끝내려면 모든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얼핏 그래야 할 것 같지만… CDC가 코로나19 같은 공중보건위기에 대응한다고 할 때 핵심은 감염병만 잡는 게 아니라 감염병을 잘 차단하면서 동시에 다른 공중보건 기능도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그래서 상황이 터지면 긴급상황실(EOC·Emergency Operations Center)을 가동하고 여기서 모든 대처를 한다.” (다른 부서는 관여를 안 하나.) “긴급상황실은 평상시에는 작은 방에서 상시 모니터링 정도로 소규모다. 그러다 터지면 200∼300명이 쫙 들어와 대응한다. CDC 내 각 부서에서 오는데 왜 이렇게 하냐면… 위기에 대처하면서도 다른 공중보건 기능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게 안 되면 감염병은 막을지 몰라도 다른 부분에서 사망자가 속출한다. 감염병이 발생해도 치료 받아야 할 다른 환자가 많지 않나.”

―우리는 방역 당국은 물론이고 의료계까지 총동원된 상태다.

“마음은 백번 이해하고,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의료진의 밤샘 사투는 지양해야 한다. CDC에는 재난 상황에서도 하루 최대 12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게 하고, 그걸 점검하는 문화가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그러나.) “지금 현장 의료진이 초긴장 상태로 수십 일을 보내고 있는데… 그렇게 쪽잠 자는 상황이 계속되면 모든 의료진이 탈진할 거다. 위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때는 의료진의 건강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이 없으면 대응을 할 수가 없으니까. 감염병에 따라서는 의료 인프라가 흔들릴 수 있다는 큰 그림까지 봐야 한다.”

―큰 그림이라니….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발생했을 때 초기에는 잘 몰라서 사망자 중 의료진이 15%나 됐다. 그런데 에볼라가 끝난 뒤 주 발병국의 보건지표가 10년 전으로 후퇴했다. 의료진 사망으로 의사 간호사 없이 출산하는 상황 같은 게 벌어진 거다. 그 과정에서 산모가 사망하고…. 그래서 현장 의료진의 건강과 안전이 중요한 거고, 감염은 물론이고 다치거나 과로해서도 안 된다. 자원봉사자도 먼저 자기 몸에 기저질환이나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고 가야 한다. CDC에서 역학조사관으로 현장에 파견 가려면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턱수염이 있어도 보내지 않는다.”

―턱수염이 무슨 상관인가. 건강 상태를 업데이트하다니?

“미국은 N95(우리의 KF94등급) 마스크를 마스크라고 부르지 않고 호흡보호구라고 한다. 보건의료 인력이나 긴급대응 요원이 N95를 쓰려면 원칙적으로 의사에게 써도 문제가 없다는 허락을 받아야 한다. 등급이 높은 만큼 호흡이 불편하기 때문에 기저질환이나 호흡기가 약한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얼굴에 잘 밀착되는지 핏(Fit) 테스트도 하는데 수염이 길면 공기가 새기 때문에 안 된다. 종교적 이유로 턱수염을 안 깎았는데 현장에 나갈 수 없어 내근만 한 경우도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제대로 된 역학조사관을 양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큰 오해가 있는데… CDC 역학조사 전문요원 양성 과정(EIS)은 현장에서 접촉자 동선 파악 기술을 가르치는 과정이 아니다. 미국 내 공중보건기관의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교육하는 곳이다. 각종 재난 상황에서 현장에서 사령탑인 본부까지 어떻게 대응하고 움직이는지 총괄적인 시각을 갖도록 해준다. 특히 핵심 과정 10여 개가 있는데 이걸 통과하지 못하면 수료증을 안 준다. 그중 하나가 CDC 기관지에 리포트를 게재하는 것이다.” (많이 어렵나.) “일반인도 볼 정도로 독자층이 매우 넓기 때문에 아주 쉽게 써야 하는데 900단어와 그림 하나 표 하나로 해야 한다. 일반 논문이 4000단어 정도니 그걸 줄여 쉽게 쓰기가 굉장히 어렵다. 나도 처음에는 20번 정도 퇴짜를 맞은 것 같다.”

―주로 뭘 지적하던가.

“하도 많아서… 용어의 부정확성이 많았다. ‘아마’, ‘…일 수 있다’ 식의 애매한 표현은 못 쓴다. 불확실하면 명확하게 불확실하다고 하고, 쓰는 목적도 분명히 하도록 요구한다. CDC 센터장 직속으로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국장이라는 엄청나게 중요한 자리가 있는데 우리의 공보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센터장이 해야 할 말, 하면 안 되는 말 등을 모두 조정한다. CDC 간부들이 언론 인터뷰나 브리핑에서 거의 말실수 없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정제된 표현을 하는 것은 이런 훈련을 역학조사관 양성 과정부터 끊임없이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인터뷰를 해도 일관된 메시지가 나오는데 CDC가 미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기관이 된 데는 이런 노력이 숨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표현을 말하나.) “같은 상태라도 ‘죽을 만큼 위중하지는 않다’가 아니라 ‘힘든 부분이 있지만 아직 상태가 양호하다’는 식으로. 현장에서는 조사관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협조 여부가 갈리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 건 피해야 한다.”

―역학조사관 양성 프로그램이 리더를 기르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탁상우 전 역학조사관이 CDC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재정이 쓰이는 방식, 행정이 움직이는 과정, 서류 절차는 어떻게 되고 그게 입안이 되면 어떤 효과를 내는지 등도 배운다. EIS를 나온 사람들은 CDC뿐만 아니라 미국 내 연방정부, 주정부 보건 분야의 고위층이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감염병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전체 보건 분야를 다 다룬다. 전문 분야 깊이도 현 로버트 레드필드 센터장 등 최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의학박사(MD) 등 학위를 두세 개씩 갖고 있다. 공중보건학 석사(MPH)는 흔하고 최근에는 공중보건학에서 과학(Science) 부분을 더 깊게 한 MSPH 학위를 취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시너지를 위해 사회학, 인류학, 심지어 정치학 박사들도 뽑는다.”

―인류학이 공중보건과 어떤 관계가 있기에….

“우리는 역학조사를 환자와 면담해 동선을 파악하는 걸로 생각하지만… 진짜 역학조사의 목적은 질병의 경향과 특성을 파악해 확산을 막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의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 아닌가.) “질병은 단순한 요인으로 생기지 않는다. 문화 습관 인종 정치·경제적 상태 등등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인간의 건강 문제에 나타난 것이다. 특정 인종의 식습관은 질병과 밀접하지만 문화인류학자는 알아도 의사는 모른다. 물론 보건학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 정도는 교육 중 배우면 충분하다고 CDC는 본다. 대신 어떤 전공이든 자신이 잘하는 걸 갖고 와 시너지 효과를 내달라는 거다. CDC 손상예방통제센터(NCIPC)는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많이 나는 특정 지역에 대한 역학조사도 한다. 만약 운전을 방해하는 사각지대가 숨어 있었을 경우 교통 관련 전공자라면 현장에서 바로 알 수 있지 않겠나.”

―질병은 정치사회 문제와 연관되기 쉬운데 CDC는 어디까지 관여하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불법 이민자들이 멕시코 국경을 넘은 뒤 아이들을 버리는 일이 사회문제가 됐다. CDC가 감염병 유포 등 공중보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 바로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대응했다. 불법 이민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고, 아이들 인권 문제도 있지만 개입한 거다.” (운영은 독립적인가.) “CDC는 미 보건사회복지부(HHS) 산하지만 인사와 예산을 스스로 짠다.” (우리 질병관리본부장은 5급 이상 인사도 못하는데….) “더 중요한 건 CDC가 예산을 어떻게 쓰는가인데… 절반 이상을 주 정부 등 지방정부 보건 분야 지원에 쓴다. 각 지방정부의 보건 역량이 강화되고, 거기서 정확한 자료와 통계가 신속하게 올라와야 연방정부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으니까. CDC만 강화하겠다고 예산을 쓰지 않는다. 가짜 뉴스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그런 것도 CDC가 대응하나.

“긴급상황실이 가동되면 그 안에 합동정보센터(JIC·Joint information center)가 만들어지는데 쉽게 말해 잘못된 정보에 CDC 이름으로 댓글을 다는 일을 한다. 그건 잘못된 사실 같으니 여기로 가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JIC 안에 팀만 15개 이상 있다.” (하… 너무너무 부럽다.) “갈수록 이 부분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더라. 큰 언론, 브리핑도 신경 써야 하지만 위기 소통의 대상을 보는 관점을 더 넓혀야 한다. 잘못된 걸 바로잡아 주면서 정부기관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미국에서 왜 갑자기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 건가.

“웃긴 게…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에볼라 사태를 겪으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감염병을 대비하는 ‘세계 보건안보팀’을 만들었다. 그걸 해체한 게 트럼프다. 당시 그 팀이 감염병 팬데믹이 올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도 왜 CDC가 아니라 연방재난관리청(FEMA)에 맡겼는지 모르겠고. CDC 예산도 해마다 줄이고 있는데 CDC가 아무리 최고의 집단이라고 해도 힘들 것 같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