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작가 옌롄커, 고도성장 이면 다룬 ‘작렬지’ 출간

옌롄커는 “소설을 통해 뭔가를 말하려 하기보다 독자들 자신이 제각기 다른 느낌을 받기를 기대할 뿐”이라며 “내 소설이 독자에게 복잡하게 인식되는 것이 희망”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설 ‘작렬지’의 작렬이란 말은 그가 2002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대학 담벼락에 붙은 포스터에서 읽고 영감을 받아 따온 것이다. 자음과모음 제공

13일 ‘딩씨 마을의 꿈’의 옮긴이 김태성 씨의 번역으로 e메일로 만난 옌롄커는 “작렬지가 현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1949년(중국 건국) 이후 모든 과거는 현재가 되고 있고, 모든 현재는 과거의 번역”이라고 말했다. 대기근과 문화대혁명, 공산당 1당 체제, 마오사상 등을 다룬 이전 작품들이 드러낸 ‘어둡고 잊혀진’ 진실은 번영을 구가하는 현재에도 반복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작렬지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책력(冊曆)이 “숙명을 상징한다”며 “중국 역사는 항상 숙명과 윤회 속에 있다”고도 했다.
작렬지는 1980년 개혁개방정책 이후 중국의 ‘자례’(작렬·炸裂의 중국식 발음)라는 마을이 촌(村)→진(鎭)→현(縣)→시(市)→성(省)으로 커가는 과정을 쿵씨, 주씨 집안의 대립, 두 집안 남녀의 갈등, 쿵씨 4형제 간의 혼란으로 엮어냈다. 그 성장의 그늘에서 인간의 사랑, 욕망과 음란함, 사악함이 배금주의 집단주의 관료주의 군국주의와 적나라하게 교차한다. 그러나 결론에서는 ‘허망함’이 짙게 배어난다.
몽유 상태의 중국인을 상징하듯 소설에서 주인공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매우 수동적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중국에는 개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사람은 반드시 집단과 국가 안에 존재해야 합니다. 개인의 생명과 운명은 집단과 국가의 의지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최대한 사상, 언론, 행동을 통일해야 하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퇴치의 과정에서 보듯 개인(人)은 인민이 되고, 인민은 추상적 개념이 됩니다. 개인의 생명이 이탈하고 은폐돼 인간의 의미와 가치가 없어지게 됩니다.”
중국 일부 독자가 “현대 사회 발전 과정에서의 도둑과 창녀들을 썼다”고 우스갯소리를 할만큼 이 작품에서 여성은 성(性)을 무기로 삼는 전형성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여성은 팜파탈도 요부도 아니다. 인간의 소외와 소외됨, 왜곡과 왜곡됨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소설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왜곡되거나 소외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인식하는 (중국의) 삶의 현실, 삶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능청스러운 허풍과 극도의 과장, 반어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교감한다. 이는 글쓰기에 대한 문학적 실험이자 문학적 사유(思惟)인 ‘신실(神實)주의’에서 기인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달 초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과 정보 통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글을 국내 계간지에 실었던 옌롄커는 10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우한을 방문해 사실상 ‘승리’를 선언한 것에 대해 “승리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재난 앞에서 인류는 영원히 승리를 얘기할 수 없어요. 역병이 물러간 뒤에는 어떻게 해야 거대한 재난이 중국과 인류를 또다시 습격하지 못하게 할지 반성하고 성찰하고, 고민하고 사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중국의 번영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깨어 있어 뭔가를 냉철하게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문학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