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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공자 왈 맹자 왈’ 중국 떠받드는 세대에 몽둥이 한대!

입력 | 2020-03-24 12:11:00

1920년 05월 07일





플래시백

‘오늘날 조선 기성세대들은 썩어빠진 과거숭배 사상과 천한 허영심으로, 후배를 기르고 이끄는 데는 아주 짜고 선배를 떠받드는 데는 매우 넉넉할 뿐이다.’ 동아일보 1920년 5월 7일자 1면에 실린 사설의 한 구절입니다. 제목은 ‘조선 부로에게 고함’으로 ‘조선 기성세대에게 알린다’의 뜻입니다. 동아일보는 이 제목의 사설을 5월 4~9일 6회에 걸쳐 실었습니다.

사설은 기성세대가 집안에서 전제군주처럼 자녀들에게 절대 복종만을 강요한다고 비판합니다. 자유와 해방의 진보사상을 배워도 모자랄 판에 봉건시대의 당파적, 계급적 보수사상에 갇혀있다는 것이지요. 자녀들은 성인이 돼도 가장의 지시와 감독을 받을 뿐 자유롭게 의견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기성세대는 윗사람을 잘 모신다고 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섬김을 받지 못할까봐 시늉만 내는 것이라고 꼬집습니다.

자녀 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가장의 권리로 생각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여긴다고 했죠. 이러니 교육을 중도 포기하고 교육을 해도 관직을 얻거나 이전에 당한 모욕을 나중에 복수하려는 목적을 앞세운다는 겁니다. 돈을 쓰는 데는 인색해 자선이나 구호에 나서는 일은 없다고 탄식했습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자녀를 강제로 결혼시키는 일도 힘주어 비판했습니다. 조혼이 종마(씨말)나 종우(씨소)를 접붙이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따진 것이죠.

사설은 이런 기성세대는 한학에 빠져 공자 왈 맹자 왈 외우기나 하고 노자와 석가모니는 이유 없이 거부하며 현대과학은 무시한다고 질책했습니다. 주희는 주자로, 송시열은 송자로 떠받드는 유림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개탄했죠. 노인끼리, 부자끼리, 친인척끼리만 왕래하는 당파적 행태를 떠올릴 때마다 피가 끓고 열이 뻗친다고 격한 감정까지 드러냈습니다.

1920년에는 아직 유림의 영향력이 막강했습니다. 중국 사신을 맞는 영은문(迎恩門)을 1894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지만 중국을 우러르는 모화의식은 여전했죠. 이런 때에 6회 연재한 사설로 유림이 썩어빠졌다고 했으니 파장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5월 8, 9일에는 같은 1면에 ‘가명인(假明人) 두상에 일봉’이라는 칼럼을 2회 실었습니다. 제목은 가명인 즉 명나라 사람 행세하는 유림의 머리에 몽둥이 한 대라는 뜻이죠. 이 칼럼은 공자가 70명 제자와 함께 4만 명을 거느려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도발적으로 묻습니다. 조선 유림들은 “성인이 오시는구나. 왜 이렇게 느리게 오시는가”라고 하겠지만 일본은 먼저 공자의 목을 베고 나중에 죄를 묻는다고 비교했습니다. 감히 공자의 목을 벤다고 썼으니 유림의 타오르는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습니다. ‘어떤 요망스러운 놈이 이런 말을 무엄하게 했느냐’며 길길이 뛰었던 것이죠.

당시 동아일보는 20대 청년들이 주축이었습니다. 이들이 볼 때 유림은 나라를 빼앗긴 책임이 있는 기성세대였죠. 그런데도 옛것을 놓지 못하고 권위만 내세우니까 세대교체를 해야 하겠다고 정면 공격했던 것입니다. 유교의 정신은 놓아두고 서양의 기술만 배우면 된다는 ‘동도서기론’은 소용없다는 논리이기도 합니다.

논설반 기자 김명식(왼쪽), 국어학자 권덕규

유림이 불매운동까지 한다며 거세게 항의하자 사설 필자 김명식과 ‘한별’ 필명으로 칼럼을 기고한 국어학자 권덕규는 필화에 휘말렸습니다. 동아일보의 첫 필화이기도 했죠. 유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사장 박영효가 사과문을 실으라고 했죠. 이 때문에 열린 사원회의에서 폐병이 깊어진 추송 장덕준은 “왜 우리 청년들을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느냐”며 치를 떨다 피를 토해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동아일보는 한쪽에서는 총독부에 맞서고 다른 쪽에서는 과거에 파묻힌 기성세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필화는 편집국장 이상협이 필명 ‘한양과객’으로 두 글을 나무라는 독자기고를 써서 5월 13, 14일 실은데 이어 주간 장덕수가 5월 17~20일 사설 ‘가명인 두상에 일봉과 유교의 진수’를 4회 실어 칼럼의 일부 표현은 무례했다고 하면서 정리됐습니다. 하지만 박영효 사장은 6월 1일 결국 사임했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朝鮮父老(조선부로)에게 告(고)함 (四(사))

二(이)의 二(이)、父老(부로)된 義務(의무)를 行(행)하라.


流水(유수)는 高處(고처)에서 低地(저지)로 下(하)하고 社會(사회)의 進運(진운)은 先(선)에서 後(후)로 行(행)하나니. 그럼으로 父老(부로)가 되는 者(자)는 過去(과거)에 對(대)하야 義務(의무)를 負(부)할 것이 아니오 現在(현재)와 未來(미래)에 對(대)하야 義務(의무)를 盡(진)할 것이라. 父老(부로)된 者(자)의 그 時代(시대)의 存在(존재)는 勿論(물론) 前父老(전부로)의 德(덕)이라. 前父老(전부로)의 保護(보호)와 養育(양육)과 指導(지도)로 因(인)하야 그 時代(시대)의 存在(존재)를 有(유)한 것이니. 以恩報恩(이은보은)하는 普通(보통)의 慣例(관례)로 보건대 自己(자기)에게 恩德(은덕)을 施(시)한 先輩父老(선배부로)에게 對(대)하야 義務(의무)를 盡(진)하는 것이 可(가)하나 그러나 元來(원래) 人類(인류)의 理想(이상)은 社會文化(사회문화)를 催進(최진)하야 自由(자유)와 幸福(행복)의 共通利益(공통이익)을 增進向上(증진향상)함에 在(재)하니 그럼으로 敎育(교육)을 行(행)하는 것도 社會的(사회적) 共進(공진)의 利益(이익)을 爲(위)함이오. 産業(산업)을 興(흥)하는 것도 또한 社會的(사회적) 共通利益(공통이익)을 爲(위)함이라. 先進(선진)이 後進(후진)에게 對(대)하야 養育(양육)과 敎導(교도)의 責(책)이 有(유)함이 엇지 先進(선진)된 者(자)― 自體(자체)를 爲(위)함이리오. 古來(고래) 法典(법전)에 養生(양생)을 主(주)로 하고 送死(송사)를 從(종)으로 함도 또한 以上(이상)의 意味(의미)에서 出(출)한 것이라. 그런대 現今(현금) 朝鮮父老(조선부로)들은 如斯(여사)한 社會(사회)의 原則(원칙)과 古來(고래)의 法典(법전)을 逆行(역행)하야 腐敗(부패)한 慕古思想(모고사상)과 野鄙(야비)한 虛榮心(허영심)으로 後進(후진)을 保養(보양)하고 敎導(교도)하는대는 極(극)히 薄(박)하고 先輩(선배)를 尊仰(존앙)하고 追崇(추숭)하는대는 甚(심)히 厚(후)하야 每事(매사)를 말할 때에 오즉 先人(선인)만 稱道(칭도)하고 後輩(후배)는 眼中(안중)에 置(치)치 아님은 勿論(물론)이오. 비록 後輩(후배)의 主張主義(주장주의)가 可(가)할지라도 先人(선인)의 主張(주장)과 秋毫(추호)라도 갓지 아니한 點(점)이 有(유)하면 各般(각반)으로 排斥(배척)과 驅迫(구박)을 加(가)할 뿐이라. 그러나 人生(인생)이 先輩(선배)에게도 義務(의무)가 無(무)한 것은 아니니. 父老(부로)에게 對(대)하야 後進(후진)이 되는 저들이 果然(과연) 그 義務(의무)의 所在(소재)를 理性(이성)으로 覺得(각득)하고 此(차)를 充實(충실)히 履行(이행)하는 것이라 하면 비록 다른 義務(의무)는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는 그 義務(의무)에 限(한)하야는 嘉尙(가상)한 事(사)이라고 云(운)치 아니치 못할 바이나 그러나 그 義務(의무) 卽(즉) 先輩(선배)에게 對(대)한 義務(의무)를 充實(충실)하게 履行(이행)하는 것이 忠良(충량)한 誠意(성의)에서 出生(출생)한 것이 아니오. 大槪(대개)는 虛榮(허영)과 野陋(야루)로 말미아마 出來(출래)한 바 虛僞(허위)일 것이니. 一例(일례)를 擧(거)하야 말할진대 父母(부모) 生前(생전)에는 朝夕供養(조석공양)을 泛泛做去(범범주거)하다가 死後(사후)에 至(지)하야는 비로소 護喪治山(호상치산)을 極(극)하고 大地名堂(대지명당)을 求(구)함에 傾家破産(경가파산)을 當(당)할지라도 吝嗇(인색)치 아니함을 볼지라도 그 誠意(성의)의 所在(소재)를 可(가)히 알 바라. 그리하고 先人(선인)을 尊崇(존숭)하는 것도 二種(이종)의 意味(의미)가 有(유)하니. 一(일)은 因襲道德(인습도덕)으로 盲目的(맹목적) 慕古思想(모고사상)에서 出來(출래)하는 것이니 卽(즉) 無理解(무이해)한 父老(부로)들이 無識(무식)한 所致(소치)로 行(행)하는 것이며 他(타) 一(일)은 稍有知覺(초유지각)하고 自稱唯我(자칭유아)라는 者(자)들이 無價値(무가치)한 慕古思想(모고사상)으로 無條件(무조건)하고 先人(선인)을 尊崇(존숭)하는 것은 不可(불가)함을 自知(자지)하나 그러나 만일 自已(자기)가 率先(솔선)하야 先人(선인)을 尊崇(존숭)치 아니하면 自己(자기)의 後進(후진)이 自己(자기)를 尊崇(존숭)치 아니할 念慮(염려)가 有(유)함으로 故意(고의)로 行(행)하는 野陋(야루)한 者(자)도 업지 아니하니. 이러한 先生(선생)들은 漢學(한학)에 心醉(심취)하야 孔子曰孟子曰(공자왈맹자왈)하며 無理由(무이유)하게 老佛(노불)을 排斥(배척)하고 또 現代科學(현대과학)을 無視(무시)하며 無條件(무조건)하게 朱熹(주희) 宋時烈(송시열)을 朱子(주자) 宋子(송자)라 하며 祖述(조술)하는 者(자)가 온대에서 볼 수 잇나니라. 그러하고 敎育(교육)하는 것을 社會的(사회적) 動物(동물)인 社會的(사회적) 義務(의무)로 알지 못함은 勿論(물론)이오. 自己(자기)가 自己(자기)된 現在(현재)가 前父老(전부로)와 前社會(전사회)에서 造成(조성)된 것이니 이 恩惠(은혜)를 自己(자기)가 밧은 前社會(전사회)나 前父母(전부모)에게 報應(보응)하지 아니하고 後進(후진)과 後社會(후사회)에 對(대)하야 報應(보응)하는 因果報應(인과보응)의 義務(의무)로 생각지 아니할 뿐 아니라 도로혀 그 子女(자녀)를 敎養(교양)하는 것이 自己(자기)의 一種(일종) 權利(권리)와 갓치 忘思(망사)하는도다.

그럼으로 自己(자기)의 子女(자녀)를 잘 養育(양육)하거나 잘못 養育(양육)하거나 잘 敎育(교육)하거나 잘못 敎育(교육)하거나 都是(도시) 自己(자기)의 自由(자유)라 하야 그 子女(자녀)에게 對(대)한 行動(행동)은 그 父老(부로)된 者(자)가 如何(여하)히 措處(조처)를 하얏던지 一般社會(일반사회)의 嚴正(엄정)한 輿論(여론)도 잇지 아니하고 또 그 子女(자녀)를 敎育年令(교육연령)에 그 父老(부로)된 者(자)들이 敎育(교육)을 與(여)치 아니하면서도 良心(양심)에 아무 苛責(가책)을 受(수)하는 氣色(기색)이 無(무)하고 儼然(엄연)히 處世(처세)하야 그 子女(자녀)를 오즉 使喚(사환)할 뿐이며 或(혹) 그 子女(자녀)에게 敎育(교육)을 施(시)하는 者(자)가 有(유)하다 할지라도 그 本旨(본지)는 自己(자기)의 當然(당연)한 義務(의무)로 생각하야 行(행)하는 者(자)가 極(극)히 稀少(희소)하고 大槪(대개)는 他(타)에게 羞辱(수욕)을 當(당)하야 그 雪耻(설치)를 直接(직접)으로 行(행)할 수 업슴으로 그 子女(자녀)를 敎育(교육)하야 將來(장래)의 復耻(복치)할 深量遠策(심양원책)으로 施(시)하는 者(자)도 有(유)하며 官尊民卑(관존민비)의 惡習(악습)으로 官(관)을 圖得(도득)하야 兩班(양반)이 되면 自己門戶(자기문호)에 榮光(영광)으로 생각하는 때이문며 或(혹) 榮光(영광)으로는 생각지 아니할지라도 그 官(관)의 權勢(권세)를 利用(이용)하야 自已一家門(자이일가문)을 外人(외인)의 侵入(침입)으로 免(면)케 하야 安樂(안락)의 基(기)에 置(치)하랴는 때문도 有(유)하니. 그 子女(자녀)를 敎育(교육)식히는 內心(내심)을 推察(추찰)하면 可憎(가증)함이 比(비)할 때 업스나 그러나 그 動機(동기)는 如何(여하)하얏던지 間(간)에 敎育(교육)만 極力(극력)하야 施與(시여)하면 多幸(다행)이지만은 元來(원래) 그와 갓흔 動機(동기)로 施行(시행)한 것이니 中途(중도)에 至(지)하야 九仞(구인)에 一簣(일궤)를 缺(결)케하는 事(사)가 比比(비비)할 뿐이오. 初志(초지)를 貫徹(관철)하는 者(자)는 極(극)히 少數(소수)이라. 그리하고 社會(사회)의 義務(의무)에 對(대)하야는 極(극)히 冷膽(냉담)하야 敎育(교육)이나 慈善(자선)이나 救護(구호)를 勿論(물론)하고 精神(정신)으로나 物質(물질)로나 少許(소허)도 同情(동정)과 贊助(찬조)하는 事(사)가 無(무)할 뿐 안이라 他方(타방)에서 經營(경영)하는 社會事業(사회사업)까지라도 能力(능력)만 及(급)하면 妨害(방해)를 作(작)하는 事(사)가 無(무)치 아니하니라.

그런대 子女(자녀)를 敎育(교육)하는 義務(의무)를 알지 못하야 敎育(교육)을 間漫(간만)하게 施與(시여)함은 말할 것이 업스나 或(혹) 敎育(교육)을 施與(시여)하는 者(자)가 그 子侄(자질)이 敎育(교육)을 受(수)하면 期於(기어)히 官路(관로)로 出(출)함을 强制(강제)하는 것은 從來(종래)拜官思想(배관사상)으로 十年(십년) 燈下苦(등하고)가 一日馬頭榮(일일마두영)이라 하는 榮譽(영예)를 耽(탐)함이니. 그럼으로 今日(금일)에 至(지)하야는 官(관)을 圖得(도득)한다 할지라도 「금테」까지 업서졋슴으로 그리 榮譽(영예)가 되지 못할 것이라. 이에 그 官(관)이 尊(존)한 것이 아인 것을 父老(부로)들이 알 일이오. 社會事業(사회사업)에 對(대)하야 冷情(냉정)하는 것은 黃金(황금)을 吝惜(인석)하기 때문이니. 私有財産制度(사유재산제도)로 組織(조직)이 된 社會(사회)에 在(재)하야 더구나 다른 것으로는 아무 對遇(대우)도 밧지 못하고 오즉 黃金(황금) 때문에 如干(여간) 尊敬(존경)을 밧는 져들이 그 黃金(황금)의 感謝(감사)함을 切切(절절)히 信仰(신앙)할 것은 免(면)치 못할 事勢(사세)이라. 그럼으로 그 黃金(황금)을 生命(생명)과 갓치 생각하고 公益事業(공익사업)이나 慈善事業(자선사업)이나 其他(기타) 事業(사업)을 勿論(물론)하고 黃金(황금)으로 援助(원조)하지 아니하면 잘되지 못할 事業(사업)에 對(대)하야 冷情(냉정)하는 것도 적들의 形便(형편)으로는 無理(무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잇나니라. 그러나 黃金(황금)의 貴(귀)함이 封鎖(봉쇄)함에 在(재)치 아니하고 活用(활용)함에 在(재)하니라. 東漢(동한) 時(시)에 馬援(마원)이가 富(부)는 잘 施與(시여)함으로 貴(귀)하고 不然(불연)하면 오즉 守錢虜(수전로)가 될 뿐이라 하야 平素(평소)에 蓄積(축적)하얏던 財産(재산)을 放(방)하야 貧族(빈족)과 窮交(궁교)에게 또 社會事業(사회사업)에 投(투)하얏나니 이 사람은 實(실)로 黃金(황금)의 眞實(진실)로 貴重(귀중)함을 잘 徹明(철명)한 者(자)이로다.

볼지어다. 黃金(황금)의 效用(효용)은 人生(인생)의 需用(수용)으로 出生(출생)하는 것이니. 人生(인생)의 事業(사업)에 充用(충용)치 못하는 黃金(황금)이 有(유)하다 하면 그 黃金(황금)은 效用(효용)이 업는 黃金(황금)이 될 뿐이로다. 社會(사회)에 對(대)한 義務(의무)를 知(지)치 못함으로 貴重(귀중)한 黃金(황금)으로 하야금 無價値(무가치)한 黃金(황금)을 作(작)하는 것이 黃金(황금)에 對(대)한 罪人(죄인)이오. 또 社會(사회)에 對(대)한 害人(해인)이라. 故(고)로 自己(자기)들이 崇拜(숭배)하는 黃金(황금)으로 보던지 冷遇(냉우)하는 社會(사회)로 보던지 黃金(황금)을 壟斷(농단)하야 한갓 封鎖(봉쇄)하고 一般(일반) 社會事業(사회사업)을 도라보지 아니하는 것은 甚(심)히 可(가)치 아니한 事(사)이니라.



현대문
조선 기성세대에게 알림 (4)

2의 2, 기성세대의 의무를 행하시오.

흐르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사회의 진운은 앞에서 뒤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기성세대에 속한 사람은 과거에 의무를 질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기성세대가 된 사람이 그 시대에 존재하는 것은 물론 이전 기성세대의 덕분이다. 이전 기성세대의 보호와 양육과 지도에 의해 그 시대에 존재하게 된 것이니 은혜를 은혜로 갚는 보통의 관례로 볼 때 자기에게 은덕을 베푼 선배 기성세대에게 의무를 다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원래 인류의 이상은 사회문화의 진보를 재촉해 자유와 행복의 공통이익을 증진향상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교육을 하는 것도 사회적 공동진보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산업을 일으키는 것도 또한 사회적 공통이익을 위한 것이다. 앞세대가 뒷세대에게 양육과 교도의 책임이 있는 것이 어떻게 앞세대에 속한 사람 자체를 위한 것이겠는가. 예로부터 법전에 윗사람을 생전에 잘 섬기는 것을 먼저 하고 죽은 뒤 장사 지내는 일은 다음으로 하는 것도 또한 이상의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요즘 조선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사회의 원칙과 예로부터의 법전에 거슬러 썩어빠진 과거숭배 사상과 천한 허영심으로 후배를 보호하고 이끄는 데는 대단히 쌀쌀맞고 선배를 우러르고 왕처럼 떠받드는 데는 아주 넉넉해 매사를 말할 때 오직 선인만 칭찬하고 후배는 관심에 두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비록 후배의 주의주장이 옳다고 해도 선인의 주장과 조금이라도 같지 않은 점이 있으면 여러 가지 배척과 구박을 더할 뿐이다.

그러나 인생의 선배에게도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에게 대하여 후배가 되는 사람들이 과연 그 의무가 있음을 이성으로 깨닫고 충실히 실천한다고 하면 비록 다른 의무는 알지 못한다고 해도 알게 된 그 의무만이라도 기특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무 즉 선배에게 대한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착한 성의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대개는 허영과 천함에서 생겨나온 바 가짜일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 말하면 부모 생전에는 아침저녁 인사를 대충대충 하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초상 치르기와 묘소 마련을 지극하게 하고 큰 터에 명당을 구해 가세가 기울어 망하게 될지라도 아끼지 않는 것을 본다고 해도 성의가 있는지는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선인을 떠받드는 것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인습도덕으로 맹목적인 과거숭배 사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제대로 알지 못하는 기성세대가 무식한 까닭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조금은 알지만 스스로 나뿐입네 하는 자들이 가치 없는 과거숭배 사상으로 무조건 선인을 떠받드는 것은 옳지 않음을 스스로 알지만 만약 자기가 앞장서서 선인을 떠받들지 않으면 자기 후배가 자기를 떠받들지 않을까 걱정해 일부러 실행하는 천한 자도 없지 않다.

이러한 선생들은 한학에 심취해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이유 없이 노자와 석가를 배척한다. 또 현대과학을 무시하며 무조건 주희를 주자라고, 송시열을 송자라고 옛날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그리고 교육하는 것을 사회적 동물의 사회적 의무로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자기가 현재의 자기가 된 것은 이전 기성세대와 이전 사회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은혜를 받은 이전 사회나 이전 부모에게 갚지 않고 후배와 후대 사회에 갚는 인과보응의 의무로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일종의 자기 권리와 같이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자기 자녀를 잘 키우거나 잘못 키우거나 잘 교육하거나 잘못 교육하거나 도대체 자기 자유라고 하면서 자녀에게 대한 행동은 기성세대 된 자가 어떻게 처리하든지 일반사회의 여론도 없다. 또 자녀를 교육연령에 기성세대 된 자들이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서도 양심에 아무 가책을 받는 기색이 없고 버젓이 살면서 자녀를 오직 부릴 뿐이며 혹시 자녀에게 교육을 시키는 자가 있다고 해도 그 뜻은 자기의 당연한 의무로 생각해 실행하는 자가 대단히 드물고 대개는 남에게 당한 모욕을 직접 씻을 수 없으므로 자녀를 교육해 장래 복수하겠다고 멀리 계산하며 교육하는 자도 있다. 관존민비의 악습으로 관직을 얻어 양반이 되면 자기 가문에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는 영광으로는 생각하지 않아도 관직의 권세를 이용해 자기 가문을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게 해 편안한 토대에 두려는 이유도 있다. 자녀를 교육시키는 속마음을 미루어 살피면 비교할 수 없이 밉지만 그 동기가 어떻든지 간에 교육만 힘을 다해 시키면 다행이다. 하지만 원래 그러한 동기로 교육하니 중도에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을 뿐이다. 처음의 뜻을 끝까지 이루는 자는 대단히 적다.

그리고 사회의 의무에 대해서는 아주 냉담해 교육이나 자선이나 구호는 물론이고 정신으로나 물질로나 조금도 동정이나 찬조하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경영하는 사회사업에라도 능력만 미치면 방해를 하는 일이 없지 않다.

그런데 자녀를 교육하는 의무를 알지 못해 교육을 드물게 시키는 것은 말할 것이 없지만 간혹 교육을 베푸는 자가 자식과 조카가 교육을 받으면 기어이 관계로 나가라고 강제하는 것은 예전부터의 배관사상으로 십년 등잔 밑에서 공부해 하루 말 타고 영화 누린다고 하는 영예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는 관직을 얻는다 해도 ‘금테’까지 없어졌으므로 그렇게 영예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에 관직이 우러러볼 것이 아닌 것을 기성세대가 알아야 한다.

사회사업에 대하여 냉정한 것은 황금이 아깝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제도로 조직된 사회에 살면서 더구나 다른 것으로는 아무 대우도 받지 못하고 오직 황금 때문에 조금 존경을 받는 저들이 황금의 감사함을 절절하게 믿는 것은 피하지 못할 일이다. 그러므로 황금을 생명과 같이 여기고 공익사업이나 자선사업이나 다른 사업을 물론하고 황금으로 돕지 않으면 잘되지 못할 사업에 대하여 쌀쌀맞은 것도 저들의 형편으로는 무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황금이 귀한 것은 가둬두는데 있지 않고 활용하는데 있다. 동한 시대 마원이 재산은 잘 베푸는 것이 귀하고 그렇지 않으면 오직 구두쇠가 될 뿐이라고 해서 평소에 쌓아두었던 재산을 풀어 가난한 친척과 친구에게 또 사회사업에 내놓았으니 이 사람은 실로 황금의 진짜 귀중함을 잘 밝힌 사람이다.

보라. 황금의 효용은 사람의 쓰임으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의 사업에 갖다 쓰지 못하는 황금이 있다고 하면 그 황금은 효용이 없는 황금일 뿐이다. 사회에 대한 의무를 알지 못해 귀중한 황금을 가치 없는 황금으로 만드는 것은 황금에 대한 죄인이다. 또 사회에 대하여 해를 끼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숭배하는 황금으로 보든지 차갑게 대하는 사회로 보든지 황금을 독점해 가두고 여러 사회사업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아주 옳지 않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