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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환경 이야기]60%만 일하는 개미왕국엔 인간처럼 ‘희생정신’이 없어요

입력 | 2020-03-25 03:00:00

여왕개미는 일개미 위해 희생 안해
인간은 위기 속에서 희생정신 투철




2015년 4월 2일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서 열린 ‘개미세계탐험전’에서 학생들이 개미들을 살펴보고 있다. 개미세계탐험전에서는 국내 개미 7종과 외국 개미 3종이 전시됐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은 2015년부터 약 3년간 ‘개미세계탐험전’을 열었습니다. 탐험전에서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개미 7종과 외국 개미 3종이 전시됐습니다. 탐험전에 참여한 학생들은 여러 채집 도구와 연구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개미의 사회는 톱니바퀴처럼 정밀하게 조직적으로 운영됩니다.

○ 베짱이 같은 개미도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개미가 기계처럼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관계의 과학’이라는 저서에서 개미의 흥미로운 행태를 소개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개미 집단 중 40% 정도는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부지런한 개미 중 20%를 집단에서 떨어뜨려 놓으면 나머지 게으른 개미 중 일부가 일주일 안에 부지런히 일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알고 보면 베짱이 같은 개미도 많았던 것입니다. 반대로 게으른 개미를 걷어 냈다고 부지런한 개미가 게을러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개미 사회의 특성은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한 개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당 집단의 60%가량만 일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일을 하는 개미가 갑자기 다치거나 죽으면 놀고 있던 개미가 즉각 투입돼 필요한 절대 노동량을 충당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밖에 특정한 환경 변화에 따라 작업량이 늘어나면 놀던 개미들이 투입돼 집단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개미들은 집단이 정해주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여왕개미가 조직의 운영 방향을 정해 주면 이에 따라 일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투입됩니다. 각 개인의 행동이 사회가 정해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과거 파시즘이나 나치즘 사회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입니다. 시민은 절대군주의 권력에 굴복해야 합니다.

○ 개인의 의지가 존중되는 사회

생태주의에는 에코파시즘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친환경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므로 국가가 인위적으로 환경 보호 정책을 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전체주의 사회나 독재자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국가와 정책은 실패합니다. 개인의 의지를 존중하지 않는 기계 같은 사회는 균열이 생기면 회복 능력이 떨어져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민주적인 사회는 위기 탄력성이 뛰어납니다. 물론 개인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해 줘야 하기 때문에 정책이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책을 만들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다수가 합의하면 각 개인의 희생을 줄이고 잘못된 정책 시행에 따른 기회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위기가 닥칠 때 우리 사회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위기가 하나의 국가를 넘어서 전 세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9일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가 “최종적으로 정치적 판단”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생태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잘못된 행태입니다.

○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투명성’

생태민주주의는 생태주의와 민주주의를 합한 개념입니다. 생태주의는 사회나 조직을 하나의 유기체로 봅니다. 사회의 어느 한 부분이 파괴되면 전체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죠. 이를 민주주의에 대입하면 지구촌의 한 나라나 한 사람이 처한 어려움을 전 세계가 당면 과제로 보고 함께 풀기 위해 노력하는 생태민주주의적 관점이 탄생하게 됩니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의 대응도 생태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부적절한 부분이 많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중국이 대응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문제 해결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밝혀서 그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게 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코로나19보다 더 큰 위기인 기후위기가 찾아올 거라고 예견합니다. 2016년 여름 러시아에서는 탄저균으로 순록 2300여 마리가 죽고 주민 8명이 감염됐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오래전에 탄저균에 감염돼 죽은 동물 사체가 떨어져 나오자 사람과 동물들이 감염된 것입니다. 남정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위원은 동토층이 사라지면서 3만 년 전 바이러스가 새롭게 발견됐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만일 빙하가 녹아서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진다면 어떤 사회가 잘 대처해 낼 수 있을까요? 개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부 계층이 통제하는 사회일까요? 아니면 소통이 원활하고 과정이 투명한 사회일까요?

우리는 개미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희생’ 정신입니다. 개미 집단의 특수한 권력을 누리는 여왕개미는 일개미를 위해 희생하지 않습니다. 반면 인간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도 위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곤 합니다. 의료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대구로 향하고 있습니다. 기업인들은 거액의 성금을 쾌척하고 있습니다. 많이 갖지 못한 익명의 시민들도 자신이 가진 재산의 대다수를 떼어 남몰래 기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호장구를 쓰느라 헐어버린 의료지원단의 콧등에 붙은 밴드를 보며 희망의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수종 서울 신연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