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게는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 전쟁이나 재난이 닥쳐 의료자원이 부족할 땐 어쩔 수 없이 ‘트리아주(triage)’, 즉 환자를 분류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트리아주는 커피 원두를 골라내는 것을 뜻하는 프랑스어. 나폴레옹(1769∼1821)의 군의관이 전쟁터에서 ‘부상자 선별’의 뜻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의 회고록에는 “치명적 부상을 입은 병사들은 계급이나 수훈과 무관하게 맨 먼저 처치를 받아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프랑스 혁명 정신인 ‘평등’ 사상을 구현한 트리아주다.
세계적으로 합의된 트리아주의 원칙은 없다. ‘급한 환자부터’라는 원칙이 있는가 하면 ‘최대 다수에게 최대 이익’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1846년 영국 해군은 가망 없는 환자에 대한 수술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쏟는 의료자원이면 다수의 경증 군인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급진적인 사람들은 ‘무작위’를 주장한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고, 누군가에게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을 결정할 권한을 주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란다.
누구를 먼저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까. 유럽의 선진국이 2차 대전 이후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윤리적 고민에 빠질 정도로 코로나19의 기세가 무섭다. 한국도 병실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가 나오고 의료진의 피로도 누적된 상태다. 코로나19에 집중하느라 다른 중증 응급 환자들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럽 의사들 같은 고민 없이 위기를 넘기려면 환자 증가세를 완전히 꺾어놓아야 한다.
동아일보 3월 18일자 이진영 논설위원 칼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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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이탈리아와 스웨덴 모두 ‘성공 가능성이 높은 환자부터 치료하라’는 권고안이 나왔구나.
②지금 유럽 선진국들이 하고 있는 윤리적 고민은 반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 동안 가장 큰 고민이군.
③코로나19에 집중하느라 다른 중증 응급 환자들의 치료가 밀리고 있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해.
2.㉠∼㉣의 반대말은 모두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본문에서 ㉠∼㉣의 반대말을 찾아 써보세요. ㉠차별 ㉡중증 ㉢고령자 ㉣우선순위
김재성 동아이지에듀 기자 kimjs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