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감염을 피하기 위해 화상회의 프로그램상에서 열린 결혼식. 미국 CNN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터넷 결혼식, 장례식, 졸업식이 새로운 일상을 뜻하는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 미 온라인매체 쿼츠 캡처
이설 국제부 차장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4개월째. 짧은 시차를 두고 전 대륙을 덮친 역대급 팬데믹(대유행)은 개인, 사회, 국가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거리두기 사이트’는 변화의 작은 퍼즐 조각이다. 첼리스트 요요마가 의료진에 연주를 헌정하는 등 온라인에서는 예술을 통해 연대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셰리 터클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이를 두고 “새로운 연결이 탄생했다. 인간적 면모와 기기의 결합은 코로나19의 강력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변화의 물결이 출렁인다. 격리, 봉쇄, 통행증 등이 일상어가 된 건 기본. 방역 지침에 밀려 병원 진료, 장보기, 등교 같은 일상은 사치스러운 일이 됐다. 이런 낯선 상황이 어느 정도 질서로 자리 잡은 걸까. 이제 사람들은 ‘코로나 이후’에 궁금증을 품기 시작했다. 해외 언론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최근 ‘코로나 비포 앤드 애프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시다 스코치폴 하버드대 교수는 오히려 불평등이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상위 계층은 재택근무 등으로 소득을 유지하는 반면 하위층은 실직 후 코로나19에 감염될 위험이 높은 배달직종으로 내몰려 ‘가난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마크 로런스 슈레이드 빌라노바대 교수는 “주로 전쟁 때 동원됐던 애국심이 의료적 애국심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점쳤다. 다른 공동체를 파괴하는 대신 우리의 공동체를 지키는 이른바 ‘착한 애국심’이다. 홍콩에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에 맞서 싸운 ‘8인의 전사자’를 기리는 공원이 있다.
반면 큰 정부가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 한동안 서방 세계는 대체로 평온하고 풍요로운 시절을 보냈다. 여기에 개인의 부상과 인터넷 발달로 큰 정부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일부 정치학자는 각국 지도자가 관련 대책을 쏟아내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정부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 리더십이 실패하면 시민 연방주의(civic federalism)가 부상할 거라는 예측도 나왔다. 아콘 펑 하버드대 교수는 “정부보다 현명하게 코로나19에 대응한 지역, 시민, 민간 사회가 적지 않다. 시민 중심 연방주의가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페스트는 과학적 사고의 시대를 열었다. 스페인독감은 독일의 전력을 약화시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앞당겼다. 코로나19의 유산은 무엇보다 ‘깨어 있는 시간’일지 모른다. 미국 문화비평가 버지니아 헤퍼넌은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코로나 이후에) 관성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소설 속) 마을이 소멸한 건 (전염병이 아닌) 습관 때문이었다. … 일상에 대한 폭넓고 용감한 접근이 중요한 시기다. … 코로나19의 시대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머무는 시간이 찰나에 불과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운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