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내 삶 속 동아일보] <7> 태평양 요트 횡단 이재웅씨
34년의 간격을 두고 배로 태평양을 건넌 이재웅 씨(왼쪽)와 최준호 씨가 19일 서울 신문박물관에 전시된 파랑새호 사진 앞에서 손을 맞잡았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거기에 바람까지 불면 정말 무섭지.”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에서 19일 만난 이재웅 씨(68)와 최준호 씨(40)는 서로를 ‘영웅’이라고 불렀다. 이 씨는 중고교 동창 노영문 씨(68)와 함께 1980년 국산 요트 1호인 ‘파랑새호’를 타고 한국인 최초로 태평양 요트 횡단에 성공했다.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사업이었다.
이 씨는 “살아 돌아올 확률이 절반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33피트(약 10m)의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시작한 모험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돛 일부가 파손되는 바람에 항해는 예정보다 20일가량 길어졌다. 보름 만에 무선장비가 고장 나 고국에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이 씨는 “돈이 없어 육상용 무선장비를 샀는데 방수 기능이 부족했다”며 웃었다.
두 청년은 바람과 파도, 향수병과 싸우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끝에 75일 만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이 씨와 노 씨는 국민적 영웅이 됐고 1980년 본보 선정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영광이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은 5·18민주화운동 등 현안에서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둘을 활용했다. 이 씨는 “당시 만나는 분들이 광주 얘기를 하며 ‘그래도 자네들 덕분에 위안이 됐다’고 할 때마다 정권이 괘씸했다. 대통령 취임 축하 행사에 초청받고도 안 갔다”고 돌이켰다. 노 씨는 “(영광을) 도둑맞았다”는 말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들의 모험은 후배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사업 부진과 지인의 연이은 죽음으로 고민에 빠졌던 최 씨는 2014년 초 ‘내가 태어난 날(1980년 8월 7일)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며 옛날 신문을 뒤지다가 파랑새호 도착 소식(8월 6일)을 접했다. 최 씨는 “마치 감전된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귀국 후 인터뷰에서 파랑새호 영웅을 만나고 싶다고 했던 최 씨는 이날 소원을 이뤘다. 상기된 표정으로 대화하던 최 씨는 “한국에 이런 대단한 분이 있다는 걸 잘 모른다. 모험가를 더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 씨는 “청년들의 도전 없이 한국은 생존할 수 없다. 도전은 젊음의 특권”이라고 강조했다. 둘은 “앞으로도 동아일보가 청년의 모험과 도전을 소개하고 격려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에 체류 중인 노 씨는 e메일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당시 도전을 생각하며 극복할 수 있었다”며 “후배들이 새로운 해양 도전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