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나눔]이승우 ‘119레오’ 대표

소방관이 입던 방화복으로 가방을 만들고, 가방 판매 수익금으로 소방관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119레오’의 이승우 대표가 19일 서울 성동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해 9월 서울고등법원은 고 김범석 소방관(사망 당시 31세)의 ‘공무상 사망’에 대해 이렇게 판결했다. 2014년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만에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날 유족과 함께 판결을 숨죽여 지켜본 이가 있다. 소방관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119레오’의 이승우 대표(27)다. 19일 서울 성동구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 인정받지 못하는 ‘영웅’의 죽음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고 김범석 소방관이다. 고인은 2006년 소방공무원에 임용된 뒤 화재출동 270회, 구조활동 751회 등 모두 1021회에 걸쳐 구조 현장을 누볐다. 술, 담배도 입에 댄 적이 거의 없었고, 몸은 언제나 건강했다. 하지만 2013년 8월 훈련 도중 고열과 호흡곤란을 느끼기 시작했고 3개월 후 희귀병을 판정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14년 6월 안타깝게 숨졌다. 그의 유언은 “자식에겐 아파서 죽은 아빠가 아닌, 사람을 구하던 소방관으로 기억되고 싶다”였다.
이 대표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미 그는 고인이었다”며 “유족들을 만나 이 문제를 함께 논의하면서 소방물품을 일시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는 이들의 죽음을 제대로 인정받게 하는 일이 급선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아리 프로젝트에 불과했던 ‘119레오’는 2018년 정식 회사로 탈바꿈했다. ‘레오’는 ‘Rescue Each Other(서로를 구하다)’의 머리글자를 딴 약자다.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다가 공무상 재해를 입은 전현직 소방관들을 지원하는 게 119레오의 역할이다.
○ 영웅의 옷으로 만든 가방
공무상 재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소송에서 ‘신체감정’은 필수 단계다. 하지만 300만 원 정도가 들기 때문에 병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에겐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119레오는 소방관들이 입다가 폐기한 방화복을 가공해 가방을 만들어 팔고, 그 수익으로 공무상 재해를 입은 소방관의 신체감정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직 매출이 크진 않지만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1300%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일본에 수출도 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렸던 수출박람회에서 한 일본 바이어의 제안을 받아 판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 2018년에는 세계소방관경기대회에 참석해 제품을 홍보할 기회도 있었다. 당시 세계 각지에서 참가한 소방관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 ‘직업병’ 예방하는 관리시스템 필요
최근 들어 119레오는 가방을 제작하는 디자이너들을 영입하며 상품성 높이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담은 물건이지만 결국 가방으로서의 기능과 디자인이 훌륭해야 사업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고객의 70∼80%가 여성인데, 그동안은 남성인 나의 체격에 맞춘 가방들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는 고객의 관점에서 실용성 있는 가방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또 다른 목표는 소방관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출동 건수에 따른 세탁 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화재 현장에서 노출되는 발암물질들로부터 건강을 보호하려면 출동 건수를 정확히 셈하고, 일정 기준이 넘은 방화복은 세탁을 맡기는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소방관들은 머스터드색 방화복을 입고 구조작업을 벌이고, 작업 이후 육안으로 옷에 때가 탔는지 확인한 뒤에 세탁한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