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동아일보 혁신과 도전의 100년] <3> 신인예술인 등용문 동아콩쿠르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콩쿠르는 한국 클래식계와 국악계, 무용계를 떠받치는 예인들과 예술 교육가들을 배출했고 이들은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여 왔다. 2017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신창용(피아노 앞)의 결선 연주 모습. 동아일보DB
1961년 7월 15일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동아일보 주최 전국음악경연대회(1964년 ‘동아음악콩쿠르’로 개칭) 예고다. 오늘날 전 세계 공연장을 휘어잡는 ‘K클래식’ ‘K발레’ 열풍은 60년간 이어온 동아일보사의 과감한 예술계 신인 발굴 및 육성 의지가 밑받침이 됐다.
6·25전쟁의 참화가 휩쓸고 지나간 지 8년이 지나도록 재능 있는 한국 음악가를 부각시키고 격려할 콩쿠르는 없었다. 문교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전국음악경연대회’가 열렸지만 부실한 진행으로 항의를 받는 상황이었다. ‘책임 있는 기관에 넘기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동아일보가 나섰다. 동아일보 사내에서는 “적자가 누적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지만 당시 전무이사 겸 발행인이던 일민(一民) 김상만 전 동아일보 회장은 “동아일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며 임원들을 설득했다.
이후 이 콩쿠르는 피아니스트 김대진 주희성 김정원 손민수 김태형, 지휘자 임헌정, 성악가 신영옥 연광철 임선혜 황수미 정호윤 양송미,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강동석 유시연, 첼리스트 송영훈 김두민 등 한국 음악계의 스타들을 배출했다.
왼쪽 사진부터 2005년 동아무용콩쿠르 발레 부문 금상을 수상한 박세은, 2012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우승자 유태평양. 동아일보DB
1985년에는 동아국악콩쿠르가 탄생했다. 당시 김병관 동아일보 전무(전 동아일보 회장)는 “고유의 문화유산이 설 땅이 없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대회는 판소리의 왕기석 왕기철 유태평양 남상일 박애리 김준수, 가야금 김일륜 민의식, 해금의 정수년 강은일을 비롯해 1000명 가까운 국악인을 배출해 왔다.
동아의 콩쿠르는 1996년 창설된 동아국제음악콩쿠르를 통해 세계 예술인에게도 그 문을 열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3개 부문을 매년 번갈아 주최하며 2007년부터 ‘서울국제음악콩쿠르’로 명칭을 바꾸어 개최하고 있다.
2017년에는 예술 영재를 위한 도전의 장을 한층 넓혔다. K팝 열풍과 함께 그 가능성이 주목받는 뮤지컬 예비스타를 위해 동아뮤지컬콩쿠르를, 조기 발굴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클래식 영재를 위해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를 신설했다. 이 대회들은 올해 각각 4회째를 맞아 다음 세대 주인공을 기다린다.
세계적인 문화예술단체의 무대를 소개하는 데도 동아일보는 앞장섰다. 1974년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협연으로 열렸고, 1975년과 1978년에는 영국 로열발레단이 내한해 유럽 본고장의 발레를 한국인에게 선보였다.
1984년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공연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쳐졌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는 세계 발레계의 신화로 불리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이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냉전시대가 막 내리기 직전 열린 이 공연은 광복 이후 최대의 문화적 사건으로 평가됐다.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