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달러 경기부양 패키지 타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공화당과 민주당 상원 지도부가 닷새간의 줄다리기를 거쳐 25일(현지 시간) 극적으로 타결한 2조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은 규모와 내용면에서 역대 최대 및 전시(戰時) 수준의 전례 없는 조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국가를 위한 전시 수준의 투자”라며 “이 나라 사람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기 위한 실탄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부터 미 4인 가족(부부와 자녀 2명)은 3400달러(약 418만 원)의 현금을 손에 쥘 것으로 보인다. 실직자는 향후 4개월 동안 현재보다 주당 600달러가 늘어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돼 한 달에 2400달러(약 295만 원)를 손에 더 쥐게 된다.
○ 금융위기 당시 구제금융 규모 3배 이 법안의 핵심은 2조 달러의 긴급 자금을 개인, 지방정부, 기업 등에 직접 지원한다는 데 있다. 2조 달러는 미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해당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추진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TARP)의 약 3배에 이르는 엄청난 액수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을 통한 기업 대출 프로그램에 5000억 달러(약 614조 원), 중소기업 구제에 3670억 달러(약 450조 원), 병원 등 의료기관에 1300억 달러(약 159조 원)를 각각 지원한다. 이 외에도 1500억 달러(약 184조 원)의 주(州) 및 지역 경기부양 기금, 퇴역 군인, 노인 및 어린이에 대한 2000억 달러(약 245조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직장을 잃고 생계가 막막한 미국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현금을 나눠 주는 파격적인 조치도 포함됐다. 연 소득 7만5000달러, 부부 합산 소득 15만 달러 미만인 성인은 1인당 1200달러, 아동은 500달러가 지급될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성인에게 평균 600달러를 지급했는데 이번에는 액수를 대폭 올렸다. 현금 지급은 정부가 수표를 주거나 은행 계좌에 직접 입금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 산업계 5000억 달러 지원 여부가 쟁점 이번 협상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항공업계 등을 지원하는 방안이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대기업 지원에 제한을 둬야 한다며 공화당 법안을 집요하게 반대해 왔다. 결국 백악관과 공화당이 일부 양보해 접점을 찾았다.
폴리티코 등은 민주당이 부양자금 집행에 대한 감독권을 얻어냈다고 전했다. 지원을 받는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도 1년간 제한된다. 5000억 달러 중 4250억 달러는 연준을 통해 기업, 주 및 지방정부 지원에 쓰고 항공사에는 500억 달러, 항공화물업계에는 80억 달러, 국가안보 중요 기업에는 170억 달러를 배정하기로 했다.
다만 공화당 역시 농장 구제를 위한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포함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아이오와 등 중서부 농장지대(팜벨트)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보증대출 역시 공화당 초안(3500억 달러)보다 170억 달러가 늘었다. 상원은 이르면 25일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다만 하원의 표결은 다소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 관계인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만장일치’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자가 격리 중인 의원들도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CNBC는 “펠로시 의장이 하원 표결 전 합의안에 대해 일부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