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조만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본부를 설치하기로 하고, 도쿄와 수도권 지자체는 시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요청하는 등 뒤늦게 비상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도쿄올림픽 때문에 그동안 문제의 심각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다가 연기 결정이 난 뒤에야 비로소 대응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NHK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6일 특별조치법에 근거한 정부 대책본부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13일 국회를 통과한 특별조치법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만연할 위험이 크면 총리가 대책본부를 설치할 수 있다. 이는 토지나 건물의 임시 의료시설 강제 사용 등 사유재산까지 통제할 수 있는 ‘긴급사태’를 선언하기 위한 전 단계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6일 기자회견에서 “긴급사태 선언은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현시점은 그러한 선언을 할 상황은 아니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25일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주중 재택근무, 주말 외출자제’를 요청한 데 이어 26일 수도권 지자체장들이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고 비슷한 조치를 발표했다. 이날 가나가와현 지사는 주중 재택근무와 주말 외출 자제를 요청했고, 지바현 지사는 이번 주말 도쿄에 불필요한 외출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이타마현도 이번 주말 도쿄에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달라고 도민에게 요청할 방침이다.
정치평론가인 히가시코구바루 히데오(東國原 英夫) 씨는 민영방송인 TBS에 출연해 “3연휴(3월20~22일) 전에 실시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며 “도쿄올림픽을 의식해 미리 발표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도 25일 “도쿄도가 올림픽 실현을 위해 감염자 수를 적게 보이게끔 했다”며 “올림픽 연기 결정이 나자 이런 퍼포먼스(주말 외출 금지)를 한다”고 트윗을 통해 비판했다. 이어 “도민 퍼스트가 아니라 올림픽 퍼스트다”고 일침을 놨다.
도쿄도에 이어 수도권 지자체도 외출 자제를 요청하자 사재기가 더 기승을 부렸다. 주말 식량을 확보하려는 이들이 일시에 슈퍼마켓으로 몰리면서 26일 상당수 슈퍼마켓의 식품 코너 음식과 쌀, 휴지 등 생필품이 동났다. 평상시 5분이면 계산을 끝냈지만 이날은 30분 이상 대기해야 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