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전염병 탓에 ‘사회적 거리 두기’란 생뚱맞은 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얽히고설킨 교제와 거래가 일상화된 터에 그게 말처럼 쉽진 않다. 갑작스레 동선을 최소화하려니 이모저모 득실을 따지게 되고 생활 리듬이 흐트러지고 때로 막연한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하긴 거리 두기 이전의 일상이 꼭 만족스러웠다고 장담하기도 뭣하다. 시인 황지우가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라고 했듯이 우리는 어쩌면 내키지 않는 하루하루를 ‘저지르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잠시라도 저지르지 않으면 정보에서 소외되고 연대(連帶)에서 낙오될지 모른다는 강박감에 내몰리면서. 한데 수십 일 문밖출입을 하지 않는 백거이의 자가 격리, 그 동선은 겨우 새장과 서재 정도로 단출하다. 그래도 군자며 선현(先賢)과의 조우가 가능하고 평정심으로 물욕을 멀리하니 정신마저 맑아진다. 탐욕을 없애느니, 심신을 가다듬느니 하면서 요란을 떠는 수양법이 따로 있지 않다는 시인의 담담한 충고, 우리는 그런 충고를 참 오래 잊고 살아왔다. 사회적 거리 두기까지 갈 것도 없이 허욕으로부터의 거리 두기가 실로 소중하다는 지혜로 읽으면 되겠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