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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대상 확인서, 매일 1만명 이상 몰리는데 발급은 3000건

입력 | 2020-03-27 03:00:00

[코로나19 팬데믹]소상공인 대출 걸림돌 3가지
전국 62개 센터에 직원 300명 불과… 다른 업무와 병행 일처리 속도 더뎌




“대기표가 모두 나갔으니 지금 오신 분들은 내일 다시 오셔야 합니다.”

26일 오전 9시 반경 대구 북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대구북부센터 직원이 건물 앞마당에 줄을 선 수백 명의 소상공인을 향해 외쳤다. 센터가 준비한 대기표 800장은 문을 열기 전에 이미 바닥났지만 새벽부터 기다려 온 소상공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상담을 받고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소상공인도 적지 않았다. 하모 씨(37)는 “4시간 넘게 줄을 서 기다렸는데 서류가 더 필요하다는 소리를 듣고 5분 만에 돌아가게 됐다”고 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소상공인을 위해 12조 원을 풀기로 했지만 부족한 행정 인력과 복잡한 절차 때문에 소상공인들이 ‘파산 절벽’ 앞으로 내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속한 자금 집행’을 강조했지만 현장에선 돈을 본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

① 대출 첫 단계인 확인서 발급 역량 하루 3000건 불과

소상공인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소진공 센터에서 정책자금 지원 대상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자신이 소상공인에 속하고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전국 62개 센터에서 확인서를 발급하는 직원이 약 300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하루 1만 명 이상이 센터를 찾지만 직원 1인당 처리 건수가 10건 남짓이다 보니 발급 가능한 확인서는 하루 3000장가량이다. 직원들이 다른 업무를 병행하다 보니 일처리에 속도가 안 난다. 돈은 풀기로 했지만 이를 어떻게 집행할지에 대해선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다.

26일 오전 11시 반경 경기 안산시 단원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안산센터 앞에서 관계자가 ‘접수 마감’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다. 27일부터는 소진공 홈페이지에서 직접대출을 받기 위한 인터넷 사전 예약이 가능해진다. 안산=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정부는 하루 200억 원 한도로 온라인 확인서도 발급하고 있지만 오전 9시 신청 시작과 동시에 마감되기 일쑤다. 인터넷 발급 한도를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많지만 소진공은 대출 수요자의 상당수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50대 이상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확인서 발급을 소진공에만 맡기지 말고 은행 또는 주민센터, 세무서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중소벤처기업부 측은 “책임 소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② 비상 상황에도 평상시 같은 심사…면책 규정 필요

어렵게 확인서를 발급받은 뒤에도 보증이라는 산을 또 넘어야 한다. 당장 하루가 급해 ‘긴급자금’을 신청하지만 두 달 가까이 걸리는 보증 절차 때문에 “파산한 뒤에 돈 나오면 뭐하느냐”는 한숨이 나오고 있다.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보증 과정은 상담에서 서류 심사, 현장 실사, 심사, 승인까지 총 5단계를 거친다. 이 가운데 상담 및 서류심사는 8개 시중은행에 위탁하고 있지만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상담 예약 뒤 대기 시간만 3, 4주 걸린다. 그나마 경력이 1년 이하인 자영업자들은 현장 실사까지 받아야 한다. 비상 상황에서 지나치게 기존 원칙대로 절차를 이행하다 보니 소상공인의 연쇄 파산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없애고 보증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대출 대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부 부적합한 수요자에게 대출이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정 수준의 서류를 갖추면 자동으로 보증을 해주거나 우선 대출부터 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생계가 급한 소상공인이 마스크 줄 서기 하듯 대출을 받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가 보증 과정에서 생긴 문제에 대해 면책을 해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③ 유명무실 ‘패스트트랙 대출’

자금 지원 수요가 급증하자 정부는 소진공 센터에서 바로 일주일 안에 최고 1000만 원까지 내주는 직접대출을 신청 받고 있다. 일종의 ‘패스트트랙’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랫동안 기다려야 접수시킬 수 있어 신속한 대출을 기대했던 소상공인들은 또다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게다가 대출 한도(1000만 원)가 너무 적고, 이 대출을 받으면 은행 대출을 함께 받지 못하게 해놨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1000만 원을 받느니 차라리 7000만 원 한도인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중복 대출 금지 규정을 없애고 1000만 원을 미리 패스트트랙으로 주고, 나중에 보증 등을 거쳐 나머지 6000만 원을 주면 되지만 정부는 중복 금지만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비상 상황이라면 시중은행이 보증 없이 긴급 대출을 해주는 정책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은행 여신담당자들은 “그러다가 부실이 나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은행들에도 광범위한 면책 규정을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경주=명민준 / 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