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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 열번째 봄… 얼마나 더 지나야 널 만날수 있을지”

입력 | 2020-03-28 03:00:00

[서해수호의 날]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제2연평해전’ 희생 장병 추모식




“어느덧 네가 없는 열 번째 봄을 맞는구나. 얼마나 더 많은 봄이 지나야 널 만날 수 있을지….”(고 임재엽 상사의 모친 강금옥 씨)

서해 바다를 지키던 천안함이 46용사와 함께 수심 40m 아래 차가운 바닷속으로 침몰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사 온 집에 아들의 방을 생전과 똑같이 꾸미고, 빛바랜 군번줄을 매만지며 천안함 46용사를 그리는 유족들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 10주년을 맞아 27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5회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했다. 정부는 2016년부터 제2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과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26일),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11월 23일)로 산화한 장병들을 기리며 3월 넷째 주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정해 희생 장병들을 추모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15번에 걸쳐 ‘애국’을 강조하며 한주호 준위,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 등 희생 용사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서 “애국의 가치가 국민의 일상에 단단히 뿌리내려 정치적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참여연대가 전날 천안함 폭침에 대한 ‘진상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 일각에서 여전히 북한의 도발을 부정하고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에 선을 그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서해수호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은 바로 그 애국심의 상징”이라며 “가장 강한 안보가 평화이며, 평화가 영웅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올해 163억 원 수준인 ‘전상수당’을 내년 632억 원 수준으로 다섯 배로 인상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점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으로 산화한 고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씨(77)가 나서 “대통령님, 이게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라고 하자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현충탑에 분향하려는 문 대통령 앞에 갑자기 나선 윤 씨는 “그런디요, 여적지(여태까지) (정부가) 북한 짓이라고 진실로 (말) 해본 일이 없어요. 그래서 이 늙은이 한 좀 풀어주세요”라며 “다른 사람들이 저더러 이게 어느(누구) 짓인지 모르겠다고 그러는데 제가 가슴이 무너져요”라고 했다. 윤 씨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눈을 맞춘 문 대통령은 “걱정하시는 것 저희 정부가 (살펴보겠다)”고 위로했다.

윤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도 얼른 (아들을) 따라가야 하는데, 하루도 발 뻗고 자본 적이 없다”며 “이런 마음을 문 대통령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끝까지 쫓아가서 이 억울한 마음을 풀고 싶다”며 “대통령이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 참석해줘서 마음이 조금은 풀린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천안함 46용사의 묘역 참배에 나선 문 대통령은 묘석 앞에 선 유족들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을 맞은 고 박성균 중사의 모친 송업선 씨(56)는 눈물을 흘리며 큰 목소리로 “엄마들이 왜 다 안 온 줄 아느냐. 아파서 그렇다”고 말했다. 고 김동진 중사의 모친 홍수향 씨(55)는 “군인연금은 나왔는데 보훈연금이 안 나온다”며 “살려 주이소, 몸도 아프고…”라고 호소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홍 씨에게 “세월이 간다고 아픔이 가시겠습니까. 그래도 힘내세요”라고 위로했다. 옆에 있던 관계자들에게는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다른 서해용사 유족들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떠나보낸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천안함과 함께 아들 이재민 하사를 보낸 아버지 이기섭 씨(60)는 “우리 아들이 사고 났을 때가 딱 벚꽃 피던 시기다. 이제 벚꽃이 피어도, 진달래가 피어도 좋은 줄 모르고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아들에게 ‘전우들과 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며 “10년이 흘러 (천안함 폭침이) 점점 잊혀져 가는데 국민들이 아들을 한 번쯤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 박보람 중사의 아버지 박봉석 씨(61)는 “착했던 아들, 그 얼굴을 어찌 잊나요. 매일 생각이 난다”며 “세월이 흘러 희미해지는지 주변 사람들은 천안함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날과) 똑같이 힘들다”고 말했다. 고 김태석 원사의 아내 이수정 씨(46)는 “커가면서 남편을 더 닮아가는 딸들을 보면 더 (남편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훔쳤다. 고 이용상 하사의 아버지 이인옥 씨(58)는 “제대 한 달을 남기고 사고를 당해서 바다를 보면 아들이 금방 다시 돌아올 것 같다”며 “오늘 행사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얘기가 많았는데 정부가 북한 소행이라는 얘기를 더 당당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아들 서후원 중사를 떠나보낸 서영석 씨(67)는 “18년이 지났지만 28년, 38년이 흐른다 해도 처음처럼 그대로 (아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 씨(46)는 “묘석에 붙은 남편 사진이 서해수호의 날인 오늘만큼은 슬퍼 보이지 않고 해맑게 웃는 얼굴처럼 보였다”며 “남편이 나에게 ‘잘할 수 있다’고 말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박효목 tree624@donga.com·구특교·이청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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