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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도 놀랄 까치집의 과학

입력 | 2020-03-30 03:00:00

나뭇가지 얼기설기 엮은 둥지, 무작위로 섞이며 기초 튼튼해져




까치는 산란기인 3, 4월이 되면 나무 위나 전신주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은 까치집을 짓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전봇대나 나무 위에 나뭇가지를 아무렇게나 꽂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까치집이 위태롭게 얹혀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까치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과학에 기반한 정교한 건축물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헌터 킹 미국 애크런대 고분자과학부 교수는 최근 까치나 홍관조처럼 나뭇가지로 둥지를 짓는 새들이 건축학자처럼 복잡한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응용물리학저널’에 발표했다.

새들은 자연에서 배운 지혜로 놀라운 건축술을 선보인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여름철새인 귀제비는 진흙을 풀과 함께 섞은 뒤 굳혀 동그란 주머니 모양의 둥지를 만든다. 흔히 ‘베 짜는 새’로 불리는 참샛과 새들은 이파리와 풀을 정교하게 베를 짜듯 엮어 커다란 둥지를 만든다. 중앙아메리카에 사는 청동벌새는 거미줄로 나뭇잎과 가지를 단단히 묶어 둥지를 짓는다.

흔히 ‘헝클어진 머리’를 묘사할 때 쓰는 까치집에도 자연이 전하는 위대한 건축술이 담겨 있다. 까치는 보통 나뭇가지를 겹치게 하나씩 쌓아 둥그런 모양의 둥지를 짓는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계속 쌓일수록 서로 얽히면서 점점 움직이지 않는 ‘재밍(jamming)’ 현상이 나타난다.

까치는 재밍이 일어나지 않는 초반엔 둥지를 짓는 데 고생한다. 하지만 재밍 현상이 나타나면 기초가 튼튼해지면서 빠르게 둥지를 쌓아 올릴 수 있다. 이상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기초학부 교수는 “까치는 둥지를 짓는 초반엔 나뭇가지가 잘 엮이지 않다보니 계속해서 가지를 떨어뜨린다”며 “계속 쌓다 보면 방석 형태의 구조가 어느 정도 갖춰지고 그때부터 둥그런 외벽을 올린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까치집 아래 떨어진 가지를 보면 까치 나이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까치집 아래 떨어진 나뭇가지가 많다면 까치가 숙련돼 있지 않고 어리다고 볼 수 있다”며 “둥지를 여러 번 지어본 까치 가운데엔 초반에 잘 떨어지지 않도록 진흙을 조금씩 바르는 사례가 발견된다”고 말했다. 둥지를 발로 차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둥지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발로 쳐서 자기에게 편한 크기로 맞추는 행동이다.

킹 교수는 이런 행동이 탄성 물질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히스테리시스’와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히스테리시스는 탄성 물질 분자들이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구조가 바뀌면서 탄성력을 조정하는 현상이다. 킹 교수팀은 나뭇가지를 무작위로 섞은 뒤 누르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둥지에 계속해서 힘을 주면 점차 단단하고 안정된 구조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원리를 실제 건축에 적용하기도 한다. 까치가 둥지를 짓는 방식처럼 막대만으로도 큰 구조물을 단번에 만들어 낼 수 있다. 카롤라 디리히스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컴퓨터설계 및 건설연구소 교수는 2018년 막대기 수만 개를 통 안에 쏟아붓는 방식으로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단단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킹 교수는 “값싸면서도 스스로 수리되는 건축자재나 충격을 흡수하는 포장재로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