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재택근무를 하면서 초등학생 두 아들과 삼시 세 끼를 챙겨 먹는 것도 일이다. 두 아이는 여름방학을 포함한 8월 말까지 5개월간 학교에 못 간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 모든 초중고교가 문을 닫는다는 주 정부의 발표에 학부모들은 이른바 ‘멘붕’이 됐다. 사재기 행렬에 동참하지 못해 평소 3배 값을 주고 간신히 주문한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아직도 감감무소식. “그래도 의료대란 아우성 속에 사망자가 속출하는 지역보다는 낫다”며 서로를 위로한다.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유럽의 다른 선진국들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상황이 악화되는 속도는 미국이 더 빠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뒤늦게 취한 대응 조치는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먼저 드러나고 있고, 그 경제적 사회적 파장도 확산일로다. 우왕좌왕 허둥지둥 대처 속에 미국 사회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다.
경제가 받는 충격파의 강도도 상상 이상이다.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사상 최대인 328만 건으로 치솟으며 말 그대로 그래프를 뚫어버리다시피 했다. 실업자 수가 곧 14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추산치가 나온다. 아시아나 유럽에 비해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의 경우 회사에서 잘리면 순식간에 금융채무 불이행자에 홈리스가 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허약한 사회안전망의 구멍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회 곳곳의 뇌관들은 또 어떤가. 경제 불황이 심화되면서 도시 곳곳에 폭동이 벌어지고, 인종차별주의와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열려 있다. 고립과 단절 속에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섣부른 통제 완화 조치에 나설 경우 되레 상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 앞에서는 한숨만 나올 뿐.
전대미문의 ‘팬데믹 위기’ 앞에서 미국은 이처럼 속수무책이다. 전쟁을 겪으며 쌓아온 전시 전략이 무용지물이다. 미국학을 연구해온 학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예상보다 너무 참담하다”는 반응과 함께 “코로나19 이후 미국의 쇠퇴가 본격화할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전망까지 나온다. 감염병이 21세기 글로벌 체제의 지형까지 바꿔놓고 있는 결정적인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