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 속칭 ‘불주사’도 있었다. 주삿바늘을 알코올 불에 달궈 어깨에 놓는 유독 아픈 주사. 불룩 튀어나온 흉터가 확실하게 남았다. 사전에 팔 안쪽에 투베르쿨린 검사를 하는 등 취급도 특별했다. 결핵 예방접종인 BCG다. 주삿바늘을 불에 달군 이유가 재활용을 위한 소독이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지금 BCG는 한국에서 생후 4주 이내 신생아에게 반드시 맞혀야 하는 필수 예방접종이다. 19세기 ‘백색 페스트’라 불리며 많은 생명을 앗아간 결핵은 근래 ‘잊혀진 질병’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결핵 발병 1위국이다.
▷BCG는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가 개발했다. 1908년부터 13년간 결핵균을 230대에 걸쳐 연속 배양하는 동안 균이 변이를 일으켜 변종이 만들어졌다. 변종균은 사람 몸에서 결핵을 발병시킬 힘은 없지만 결핵에 대한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 결핵 예방률은 60% 정도지만 결핵성 뇌막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막는 효능이 있다.
▷비접종국 중 하나인 네덜란드는 의사와 간호사, 노인 1000여 명에게 BCG 백신을 접종하는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연구진은 BCG가 사람의 면역체계를 향상시켜 코로나19와 더 잘 싸울 수 있게 하는지, 감염을 완전히 방지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겠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에볼라, 말라리아, 에이즈 치료제들을 가지고 국제 임상시험을 한다. 하루빨리 코로나19도 예방주사 한 방이면 안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오늘 우리가 겪는 이 사태가 우리 몸에 남은 ‘불주사’ 흉터처럼 면역을 남기고 아물어 주기를 빌어본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