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
그땐 그저 단순히 도망치고 싶은 마음의 발현이자 ‘버리기’라는 행위가 주는 쾌감이려니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것은 일종의 임사체험(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체험)이었다. 떠남을 준비하듯, 내게 속한 물건들 하나하나의 의미를 응시하고 덜어내는 것. 그러다 보면 종래에는 꼭 유언 같은 물건들 몇 개만이 수중에 남았다.
이때부터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면 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커다란 봉투를 들고 집 곳곳을 누비며 버려 마땅한 물건들을 찾는다. 봉투 한가득 올해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았던 옷이나 언젠가 보겠지 하고 놔두었던 책, 왠지 버리기 아까워 모아두었던 잡동사니들을 쓸어 담다 보면, 해묵은 잡념들도 함께 정리가 된다.
미니멀리즘 열풍을 일으켰던 일본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말한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려고 존재한다. 먼저 무엇에 둘러싸여 살고 싶은지 왜 그렇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이는 비단 물건에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의 생활 나아가 삶 전반에 대해 나만의 시선, 기준을 가지고 내 주변을 내게 소중한 물건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관계들로 채워 나가는 것. 행복은 결국 이 단순한 미션의 성취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했던가. 전 세계가 강제 ‘집콕’을 앓고 있는 코로나19 시대, 새 마음, 새날에 내어줄 심신의 공간을 ‘버리기’를 통해 미리 마련해 보는 건 어떨까. 비는 시간은 많고 불필요한 만남은 적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은 없다. 머지않아 분명히 올 봄, ‘진짜 봄’을 그리며, 오늘도 먼지 쌓인 집과 마음을 쓸어 담는다.
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