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특별수사본부 참여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관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관이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했다. 조 기획관은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성 착취물과 전쟁을 벌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28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인근에 있는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특수본)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관(53)은 디지털 성범죄의 발생과 이에 따른 피해 범위를 온라인으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제1호 여성안전기획관으로 임명됐다. 경무관급인 여성안전기획관은 여성 대상 범죄 대응을 총괄하는 자리다. 조 기획관은 이른바 ‘n번방’ 사건 이후 출범한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에서 피해자보호단장도 맡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관을 10년 가까이 지낸 그는 여성가족부 장관정책보좌관으로도 일하면서 여성과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2018년 작성한 입법보고서를 통해 성폭력처벌법 개정 논의를 재점화시켰다. 이로 인해 피해자가 스스로 촬영한 영상물이라도 본인 동의 없이 유포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있나.
“현재 어떤 법에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개념 정의가 돼 있지 않다. 다만 온라인 공간에 유포되는 불법촬영 성폭력물 등은 ‘성 착취물’이라는 표현으로 수렴돼 가고 있다. 그 전에는 ‘음란물’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 ‘음란물’은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지 않은 표현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열린 특수본 회의에서 더 이상 ‘음란물’이란 말을 쓰지 말 것을 제안했다. 그 대신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성 착취물’로 표현을 통일하자고 했다.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는 사건 구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디지털 성범죄’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성폭력이라고 했는데….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으려면 이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지난해 (버닝썬 사태와 관련된) 정준영 사건처럼 성 착취물은 강제추행이나 성폭행 등 실제 (오프라인에서의) 성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법 촬영한 성 착취물을 사이버 공간에서 유통하다가 이를 갖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성폭력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에는 ‘디지털 성범죄’라고 하면 온라인 공간에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여기는 일종의 착시현상이 있었다. 디지털 성범죄는 휴대전화 버튼 하나로 수십, 수백 명의 사람에게 성 착취물을 유포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다수의 피해자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결코 오프라인 성 범죄에 비해 덜 심각하다고 할 수 없다.”
“조주빈은 피해자들이 스스로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너 역시 동참한 거야’라는 인식을 피해자들에게 심었다. 피해자들이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보내게 만들고 그로 인해 죄책감을 갖게 만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피해자들을 노예가 되게 만들었다. 공무원까지 동원해 조직적으로 성 착취 영상을 찍게 만들었다는 건 전에 보지 못했던 범죄 수법이다. 또 조주빈이 엉뚱하게 유명 인사와 정치인을 언급하며 사과하는 것을 보고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이나 가상화폐 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 등에서는 미숙함이 드러났다.”
―텔레그램, 가상화폐, 다크웹 등을 이용하면 단속이 어렵나.
“텔레그램 본사가 독일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지금은 두바이에 있다고도 해서 경찰이 본사가 있다고 하는 곳을 찾아갔는데 없더라. 텔레그램 본사 위치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경찰은 인터폴 등과 공조해 계속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범죄는 가능하지 않다는 건 이번에 조주빈이 붙잡힌 걸 봐도 알 수 있다. 가해자들은 ‘강한 보안성’ 때문에 내면의 지배 욕구를 전부 쏟아내도 아무도 나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잔혹성이 더 심해진 것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잡을 테면 잡아 봐) 심리라고 할까. 하지만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경찰청이 자체 개발한 가상화폐 추적 시스템 등을 통해 불법자금 거래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텔레그램이 보안성이 강한 것은 맞지만 완벽한 범죄는 없다. 또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대는 ‘다크웹 전문 수사팀’을 운영 중이다. 정보기술(IT) 기업에서 550명을 사이버특채로 채용하는 등 전문 인력을 꾸준히 보강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를 적발하기 위해선 잠입수사의 필요성도 제기되는데….
―국경이 없는 디지털 범죄 수사는 국제 공조가 중요할 텐데….
“한국도 부다페스트 협약에 가입해야 한다.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64개 나라가 가입한 사이버범죄 방지협약이다. 협약을 체결한 국가 간에는 각국이 보유한 자료와 정보를 요청할 수 있고 신속하게 제공받을 수 있다.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이 유포되고 있는 온라인 공간의 서버가 해외에 있어도 신속한 수사가 가능해진다. 우리도 가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업무 소관을 두고 아직 검찰과 경찰 간에 정리가 되지 않아 가입 의향서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검경의 공동 소관으로 가입 의향서를 제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성 착취물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못한다는데….
“성 착취물 제작 유포자들은 피해 아동이나 청소년들에게 대가로 돈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신고하려고 하면 ‘돈을 받았기 때문에 신고하면 너도 처벌받는다’는 식으로 협박을 한다. 실제로 이 같은 현행법 때문에 성 착취 피해 청소년이 ‘성매매 가담자’로 몰려 법원에서 소년보호처분을 받는 경우가 있다.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9대 국회 때부터 계속 발의됐고, 20대 국회에선 해당 상임위원회도 통과했지만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사실 영원한 삭제는 쉽지 않다. 현재 영상 삭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유일하게 하고 있다. 24시간 신속 심의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해외(서버가 해외에 있을 경우) 사업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삭제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방심위에서 하는 삭제라는 게 영원히 삭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차단을 하는 것이다. 차단해도 우회해서 영상이 다시 퍼질 수도 있다. 영상이 아닌 피해자의 신상정보 유포는 탐지하는 것조차 어렵다. 장기적으로는 불법 촬영물 등 탐지기술을 인공지능 기술과 접목해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성 착취물 피해 구제 등과 관련해 우리가 참고할 만한 나라가 있나.
“호주가 부러울 만큼 잘하고 있다. 호주는 불법 촬영물을 발견하면 48시간 안에 삭제한다는 목표로 신속한 삭제 절차를 마련해 두고 있다. 불법 촬영으로 피해가 발생한 영상에 대한 삭제 요구를 따르지 않는 인터넷 플랫폼 운영자는 징역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호주에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해 불법 촬영물 삭제부터 수사와 법률·의료 상담까지 해주는 원스톱 지원센터가 있는데 트라우마 상담 등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성 착취물 피해자들을 위한 정책이 잘 실현되고 있는 나라다. 우리도 여성가족부 산하에 디지털 성범죄 원스톱 지원센터가 있긴 하지만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뭔가.
“디지털 성범죄의 근원은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것이다. 여성은 상품화 대상이 아니라 소중한 인격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이른바 ‘n번방 방지 3법’(불법 촬영물을 즉시 삭제하지 않는 온라인 사업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신설 등)으로 불리는 법안들의 입법과 디지털 범죄에 대한 형량 강화도 필요하다. 이른바 ‘그루밍(가해자에 의한 성적 길들이기) 성폭력’을 처벌하는 입법 논의도 계속돼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나서지 않으면 유사 사건은 또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번 n번방 사건을 ‘성 착취물과의 전쟁’을 벌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조주은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관
△2009년 3월∼2018년 10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2018년 4∼10월 경찰청 성평등위원회 위원
△2018년 10월∼2019년 9월 여성가족부 장관 정책보좌관
△2019년 12월∼현재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관
신동진 shine@donga.com·박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