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딥 컷]<1> 한국적 신표현주의 황창배
연극반 활동도 하고 연예인 아닌 사람으로는 최초로 포도주 광고도 찍은 황창배는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그림 중앙 인물의 손에 ‘반성문’이 들려 있 다. ‘무제’(2000년). 장지에 혼합재료. 265×150cm 황창배미술관 제공
1980년대 세계 미술계에는 신표현주의 바람이 불었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해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지금까지도 미술시장의 주류로 활동 중이다. 신표현주의를 한국적 맥락에서 보여준 작가가 황창배(1947∼2001)다.
황창배의 신표현주의는 파격에서 나온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사군자나 산수 같은 전통적 소재의 한계를 벗어나고 색채를 금기시하는 한국화의 관습을 탈피했다. “밀가루로 빵만 만드는 게 아니라 수제비, 국수도 해먹을 수 있다.” 그는 자신만의 시각언어를 완성했다.
2000년에 완성한 ‘무제’는 세련된 기교가 돋보인다. 그림의 절반 이상을 검은색, 갈색이 덮었으나 인물의 화려한 색채가 산뜻한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림 속 왼쪽 아래 나무에서 시작돼 오른쪽 상단까지 이어지는 녹색 선, 세 갈래로 뻗어나가 중심을 잡는 가운데 인물의 붉은 팔, 그림의 무게를 잡아주는 어두운 배경 위 인물의 무채색 옷을 눈여겨보자.
화면의 리듬감을 위해 인체의 형태나 색채, 배치를 자유자재로 변형했다. 그림의 출발은 도시 풍경이지만 결과물은 작가 고유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버전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1863∼1944) 등의 표현주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속성이다.
운보 김기창 화백(1913∼2001)은 한때 자신을 찾는 기자들에게 “나 말고 황창배에게 가보라”고 했다. 그러나 동양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시각 탓에 그는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아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더 자세히 만날 수 있다.
● 전통에 대한 저항, 장르 넘나든 파격… 한국화의 테러리스트
자유롭게 종이 위에 번지도록 무작위로 선을 그린 다음 구체적인 형상을 추가한 ‘숨은 그림 찾기’ 시리즈 중 한 작품인 ‘무제’(1987년). 종이에 채색. 150×189.5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소정(素丁) 황창배(1947∼2001)
▽1975년 서울대 회화과(동양화) 석사
▽1978년 제2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대통령상
▽1988년 미국 국무성 초청 뉴욕 아티스트 콜로니(Yaddo) 작업
▽1997년 ‘북한 문화유산 조사단’ 일원으로 화가 최초 방북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