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개척하는 청년창업가들] <1> ‘메디히어’ 김기환 대표
지난달 10일 국내 최초로 원격화상진료 앱을 출시한 ‘메디히어’ 김기환 대표가 메디히어를 통한 원격화상진료 시연 영상을 소개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세상에서 가장 큰 ‘온라인 병원(원격진료 플랫폼)’을 꿈꾸는 청년이 있다. 스마트폰에 접속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의사에게 자신이 원하는 언어로 진료받을 수 있는 세상을 여는 것이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메디히어’의 김기환 대표(31)는 지난달 10일 국내 최초로 원격화상진료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달부터 원격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자 내놓은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2개월 전에 먼저 선보인 덕에 재빨리 선보일 수 있었다. 고교 시절 김 대표의 결심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자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던 원격진료가 국내에 첫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영상통화로 진료받고 처방전 발급, 결제까지 모두 가능한 앱은 직원 15명의 메디히어가 만든 게 국내 최초다. 출시 20일 만에 누적 진료 환자는 2000명을 넘었다. 원격화상진료에 참여 의사를 밝힌 의사는 10명에서 50명으로 늘었다. 김 대표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때마침 우리밖에 못 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고교 1학년 때 어머니 이름이 적힌 두툼한 약 봉투를 본 김 대표는 적지 않게 놀랐다. 낱개 포장된 알약이 어림잡아도 열 알이 넘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난치병인 자가면역질환에 걸렸다고 들었다. 그는 약을 먹어도 증상이 잘 낫지 않아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던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까 인터넷과 의학 논문까지 뒤졌지만 어머니에게 필요한 의사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때 그는 “나중에 이런 의료 불편을 꼭 바꿔보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국인 유학생과 한인들은 비싼 의료비, 긴 대기시간, 언어 소통 등 ‘삼중 장벽’으로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어려웠다. 미국의 한국인 유학생과 한인 의사를 원격화상진료 앱으로 연결한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김 대표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올해 1월 미국에 원격화상진료 앱을 출시하고 시범 운영을 하던 김 대표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에서도 원격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것. 2월 28일 귀국한 지 열흘 만인 지난달 10일 국내에도 원격화상진료 앱을 출시했다.
해외 사업도 바빠졌다. 메디히어는 미국 한인의사단체들이 꾸린 코로나19 대비 태스크포스(TF)의 파트너사로 선정됐다. 국내 코로나19 진단시약 업체와 공동으로 미국 정부에 진단시약과 원격화상진료 플랫폼을 납품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원격진료가 ‘환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라는 경험이 쌓인다면 원격진료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며 “더 나아가 의료서비스의 국경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미래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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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시적으로 원격진료가 허용되면서 20년 넘게 시범사업만 하던 원격진료가 뒤늦게 첫발을 뗐다. 한국에서 원격진료를 하려면 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법 개정은 번번이 실패했다. 의료계는 원격진료 도입 시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코로나19 이전 한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는 원격진료가 가능하다. 특히 의료기관이 부족하고 의료비가 비싼 미국은 1990년대부터 대면진료의 대안으로 원격진료를 활용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BIS월드’에 따르면 미국 원격진료 시장은 2014∼2019년 연평균 34.7%씩 성장했다. 후발 주자인 일본은 지난해 로봇을 활용한 원격수술까지 허용했다.
국내에서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원격진료 인프라의 공백을 메디히어 같은 신생 벤처기업들이 메우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법 개정을 통한 전면 허용까지 이어질지 미지수다. 그럼에도 김기환 메디히어 대표는 앱으로 원격진료가 가능한 미래는 한국에서도 도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이미 세계적으로 원격진료라는 큰 흐름이 생겼고, 무엇보다 병원을 가기 힘든 환자에게 유용하고 고정비용 부담이 작아 진단비용도 줄일 수 있어 실현될 수밖에 없는 미래”라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