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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욕망[이은화의 미술시간]〈105〉

입력 | 2020-04-02 03:00:00


크벤틴 마시스 ‘대금업자와 그의 부인’, 1514년.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며 꽃을 피웠다. 벨기에 안트베르펜은 16세기 유럽 제일의 무역항이자 상공업 중심지였다. 외국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환전업이나 고리대금업으로 큰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신흥 부자들은 호화 저택을 짓고 부르주아의 삶을 누렸다.

안트베르펜의 화가 크벤틴 마시스가 그린 이 그림 속엔 잘 차려입은 대금업자와 그의 아내가 등장한다. 남편은 탁자 위에 놓인 동전을 저울질하느라 바쁘다. 돈 계산에 열중하는 남편과 달리 기도서를 읽던 아내는 통 집중을 못 한다. 손은 책장을 넘기고 있지만 눈은 돈과 저울을 향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동전들 외에도 진주와 귀금속, 장식 물병 등이 놓여 있고, 뒤쪽 선반에는 책과 서류, 장식용 접시와 사과, 묵주와 꺼진 양초 등이 있다. 살짝 열린 문 밖으로 보이는 두 남자는 험담하는 이웃이거나 돈을 빌리러 온 고객일 터다.

얼핏 보면 이 그림은 성공한 대금업자가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주문한 초상화 같지만 사실은 도덕적 교훈을 담은 풍자화다. 그림 속엔 암시와 상징이 가득하다. 우선 남편 앞에 놓인 돈과 금, 진주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선반 위 사과는 타락과 원죄를, 불 꺼진 양초는 죽음을 의미한다. 이는 돈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은 죄악이며 죽음 앞에서는 모두 덧없는 것이라는 일깨움을 준다. 또한 저울은 공정과 신용을 상징한다. 저울은 공정해야 하고 저울질(양심)을 속이면 신용을 잃는다는 경고인 것이다. 가장 주목할 물건은 탁자 한가운데 놓인 볼록거울이다. 교회가 보이는 창문 앞에서 고뇌하는 노인이 그려져 있는데, 창틀이 십자가 모양이다. 이는 신 앞에서 지난 삶을 반성하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거나 대금업자의 미래일 수도 있다. 돈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욕망의 노예가 되어 도덕과 양심을 저버리면 결국 신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교훈. 16세기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는 돈과 욕망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