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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공영제의 빈틈[횡설수설/김영식]

입력 | 2020-04-02 03:00:00


허경영 대표가 이끄는 국가혁명배당금당이 4·15총선에서 8억4200만 원에 이르는 국고보조금을 지급받았다. 77명의 여성후보를 공천했기 때문이다. 전체 지역구(253곳)의 30% 이상(76명)을 여성으로 공천하면 지급하는 여성추천보조금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전액을 챙긴 것이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늘리기 위한 제도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국가혁명배당금당의 여성 대거 공천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허 대표는 이런 제도를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선거공영제의 허점을 ‘영리하게’ 파고든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 충분하다. 현역 국회의원 한 명도 없는 이 당은 더불어민주당(253명), 미래통합당(237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235명의 후보를 냈다. 그중에는 청소년 강간,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전과자도 포함됐다. 전과자라고 출마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30%에 가까운 출마자가 전과자라는 건 충분한 검증이 없었다는 의심을 받는다.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게 선거공영제의 대의명분이다. 만성적인 돈 선거 폐해를 막고 선거풍토를 정상화하기 위한 취지로 출발했다.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에 따라 법인 기부나 후원금 모금 등을 제한하고, 그 대신 선거공영제에 기반을 둔 국고보조금제도로 비용을 지원한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선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선거보조금 27억 원을 받고 선거 사흘 전 사퇴한 뒤에도 반납하지 않는 ‘먹튀’ 논란이 벌어졌다.

▷이번 총선에서는 의원 꿔주기로 보조금을 한몫 챙기려는 ‘쩐의 전쟁’이 벌어졌다.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선거보조금 지급 전날 미래통합당의 의원 꿔주기 덕분에 원내교섭단체 기준인 20석을 채워 총 61억2300여만 원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한 더불어시민당은 24억4900여만 원을 받았다. 이쯤 되면 깨끗한 선거를 치르자는 선거공영제가 그 취지를 벗어나 과도한 비용 지원으로 정당과 출마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양상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12개 정당에 이미 440억7000만 원의 선거보조금이 지급됐다. 선거 후에도 지역구 후보자가 당선되거나 득표율 15% 이상이면 홍보물 제작비 방송광고 등 선거비용을 모두 보전해 준다. 그러다 보니 대출을 받아가며 쌈짓돈 쓰듯이 돈을 마구 뽑아 쓰는 일도 벌어진다. 다른 선진국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후한 지원이다. 선거보조금이 이 같은 편법과 꼼수로 남용되는 상황에선 제도를 중간 점검해 빈틈을 메우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선거를 국민 세금을 갖고 벌이는 돈 잔치로 변질시키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