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KAIST가 보는 미래사회]쇼핑-서비스 기능 축소된 도시… ‘만나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

입력 | 2020-04-02 03:00:00

<1> 정재승 교수가 본 ‘도시의 미래’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쇠락한 공업지대이자 항구였던 칼라사타마는 스마트 기술과 환경 친화적 솔루션을 통해 복지를 증진하는 동시에 자연을 보존하는 스마트시티로 변신하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교통시스템을 개선하고 자율주행 버스도 운행한다. 사진은 스마트시티로 변화한 칼라사타마 모습을 담은 조감도. 동아일보DB

정재승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알 수 없어서 두렵지만, 바꿀 수 있어서 미래다. 4차 산업혁명과 도시, 100세 시대, 교육과 노동, 질병, 국방 등과 관련해 우리 앞에는 어떤 미래가 다가오고 있으며,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들의 연속 기고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살펴본다.》

부동산과 관련해서 앞으로 가장 심각한 사회적 이슈는 무엇일까? 치솟는 집값이나 뉴타운 개발도 이슈겠지만 테크놀로지 관점에서 전망컨대 ‘상가 공실률’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때는 건물주가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미래에는 건물이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테크놀로지 관점에서 상가 공실률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 세계의 모든 현상을 사물인터넷으로 데이터화해서 온라인에서 인공지능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회가 된다는 거다. 이제 점점 오프라인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사라진다.

10년 전만 해도 옷가게가 온라인 쇼핑몰로 이렇게 빨리 대체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옷을 입어 보고도 안 사는데, 어찌 입어 보지도 않고 옷을 산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은 테크놀로지에 쉽게 적응한다. 옷을 입어 보지도 않고 값싸게 구입하는 패스트 패션이 유행했고, 환불도 아주 손쉬워졌다. 지난 10년간 우후죽순처럼 늘던 대형마트들이 빠르게 온라인 마켓과 배달 서비스에 밀려났다. ‘생수나 과자는 온라인에서 사도, 매출의 상당비율을 차지하는 고기, 야채, 과일은 보고 고른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온라인 마켓의 선택을 믿고 구매한다. 여기에 로켓 배송, 새벽 배송까지 가능하니 얼마나 편리한가.

○ 코로나19로 미리 경험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경향을 우리 사회에 더욱 빠르고 멀리 확산시킬 것이다. 극단적으로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생활이 가능한 환경을 갖출 수 있다. 온라인 쇼핑을 안 해봤던 어르신들도 이제 쇼핑몰 앱 하나쯤은 스마트폰에 장착했고, 배달 음식을 안 먹는다던 분들도 배달 앱을 이용한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면 사람들은 점점 대면접촉을 줄일지 모른다. 감정 에너지를 소모하기 싫어하는 현대인들이 이별을 문자로 고하고 혼밥 혼술을 즐기는 것처럼, 이제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걸 점점 꺼리는 풍속도를 보게 될지 모른다.

10대들 중엔 은행에 가보지 않은 경우가 절반이 넘고, 20대 중엔 1년에 2, 3번도 채 안 간다고 대답한 사람이 대다수다. 대부분 온라인 뱅킹 서비스로 대신한다는 얘기다. ‘○○페이’와 ‘○○뱅크’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은행의 번호표는 어르신들에게 양보하고 싶은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렸다.

이런 미래가 현실로 가능해진 건 인건비와 임대료가 점점 더 올라가는 데 비해 인터넷 기술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테크놀로지 비용은 저렴하기 때문이다. 옷가게를 하나 차리려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초기비용이 들지만, 온라인 쇼핑몰을 여는 데는 수백만 원이면 충분하다.

○ 기능 제공에서 체험 제공으로 진화

이렇게 대부분의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대체된다면, 도대체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뭘 해야 한단 말인가. 기능을 상실해버린 도시의 장소와 공간은 이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까?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직 온라인이 대체하지 못하니, 이제 도시 공간은 그렇게 변모해 갈 것이다.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사지만 독서 모임과 사인회는 서점에서 하는 식이다.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는 키친 공방이 유행하고 요가, 필라테스, 클라이밍, 피트니스 등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건물주가 낭패를 보는 것인데 상가 공실률이 높아지는 것이 뭐가 큰일인가 싶겠지만, 상가 공실률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 더욱 심각한 건 무슨 장사를 해도 수지타산이 안 맞을 정도로 침체가 예상된다는 사실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좋은 직장은 점점 더 구하기 힘들고, 저임금의 아르바이트 자리만 넘친다. 소비자인 서민들이 더욱 가난해졌으니 마켓은 활기를 점점 잃을 것이다. 게다가 저출산으로 인해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는 일할 수 있는 노동인구 비율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생물학적 수명은 길어지는데 사회적 수명이라 할 수 있는 퇴직은 일러졌으니, 30년 일해서 60년 먹고살아야 하는 시대에 돌입하게 됐다. 여기에 부양해야 할 자식과 부모까지 생각하면 노후 대책과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선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더욱 치명적일 것이다.

○ 기후변화가 몰고 올 새로운 도시 문화


머지않아 또 하나의 사회적인 이슈가 대한민국을 강타할 텐데, 바로 ‘기후변화’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의 기후조약을 충실히 이행한다고 해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피할 길이 없다. 북극의 빙하가 하루가 다르게 녹고 있고 해수면이 올라간다. 지구 평균기온이 2, 3도만 올라가도 지구 생태계는 치명적일 수 있다. 고작 평균기온 2, 3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로 인해 몇몇 종이 멸종하게 된다면 그와 먹이사슬로 연결된 다른 동물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면 지구 생태계 전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

과도한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전기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전기료 인상은 필연적이다. 향후 10년 이내에 전기자동차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자율주행까지 더해지면, 인간의 일자리는 줄게 될 것이며 정부는 이런 미래를 위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 미래 도시는 점점 스마트시티로

사진은 공기를 순환시켜 에너지 효율을 높이도록 설계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마트빌딩 ‘디 에지’. 동아일보DB

그렇다면 새로운 문명을 담아낼 지속가능한 도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도시를 어떻게 재생시킬 수 있을까? 21세기 들어 공학자들은 그 답을 ‘스마트 도시’에서 찾고 있다.

스마트 도시란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움직임, 시민들의 행동을 전부 데이터화해서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하고 도시인들의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도시다. 다시 말해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도시를 ‘시민들을 보듬는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일례로 우선 도시의 교통시스템은 지금보다 훨씬 똑똑해져야 한다. 인공지능이 보행자와 자동차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신호등을 조절해, 사람이나 차가 멈춰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일상화가 된다면 출퇴근 시간에 차 안에서 숙면을 취하거나 일을 할 수도 있다. 자율주행 택시가 나타나면 출퇴근 시간에만 그 수를 대폭 늘릴 수도 있다.

몸무게가 70kg인 한 명을 이동시키기 위해 2t이 넘는 자동차를 석유로 움직여야 하는 자동차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개인용 탈것의 세상이 돼야 한다. 실제로 유럽의 도시들은 그런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개인용 탈것 이용자들이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도록 도로도, 교통신호 체계도 스마트하게 바뀌어야 한다.

핀란드 헬싱키시가 짓고 있는 유명한 스마트 도시 칼라사타마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도시의 효율성을 높여 시민들에게 ‘매일 1시간의 여유를 돌려주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까지만 해도 버려진 항구였던 칼라사타마에서는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교통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소흐요아(Sohjoa)란 자율주행버스가 주택 단지를 운행하며 시민들을 안전하게 이동하게 해준다. 얼마 전 인텔의 후원을 받아 발표된 주니퍼 리서치 보고서에는 스마트 도시가 시민들에게 한 해 125시간을 돌려줄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시민들이 살아가게 될 미래의 도시를 상상하는 데 있어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 저출산과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기후 변화와 제4차 산업혁명은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를 것이다. 이것들은 이제 내 삶의 스타일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의 외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필자는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인 세종시(5-1생활권)의 마스터플래너(총괄기획가)로 활동하면서 미래도시를 실험하고 있다. 이곳에선 개인용 탈것과 자율주행이 보편화될 미래를 가정해 가로(街路) 환경과 교통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이다. 쓰고 남은 에너지는 건물끼리 교환과 거래가 가능하고, 병원 응급실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공유해 응급차가 빨리 적절한 응급실에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기술을 도시 운영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의 행복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세종 국가시범도시의 철학이다.

윈스턴 처칠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공간을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간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도시는 훌륭한 발명품이지만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발명품이다. 미래의 도시들이 다음 세대의 행복을 담는 그릇이 되게 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이 많다. 
 
정재승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KAIST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과 연구원을거쳐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도 맡고 있다. 의사결정 신경과학, 뇌-기계 인터페이스, 뇌를 닮은 인공지능을 연구 중이며, ‘네이처’ 등에 90여편의 논문을 실었다. 2009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차세대 리더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