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0주년/청년 100인의 ‘두 번째 돌잡이’] <중> 시련을 이겨낸 청년들
“가장 빛나던 내 모습을 다시 찾아가고 있어요. 구독자 300만 명, 아니 3000만 명의 유튜버가 되면 어쩌죠, 하하.”
‘만능 크리에이터’가 되고픈 청년 유승규(27). 당당하게 포부를 소개했지만,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였다. 말 그대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과 연을 끊었다. 중1 때부터 1인 방송을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선 “보기 안 좋다” “공부나 해라” 핀잔하기 일쑤였다. 무시와 상처가 쌓여가며 조금씩 사람들과 멀어졌다.
집에 틀어박혀 청소도, 목욕도 안 한 채 3∼4개월씩. 잠깐 바깥에 나왔다가도 또다시 은둔. 승규는 그렇게 7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다시 세상의 문을 열어젖혔다. “어느 순간 방 안 쓰레기 더미에 갇힌 날 보며 ‘아차’ 싶었어요.” 꾸준히 정신치료를 받고, 은둔형 외톨이 포용지원단체인 ‘K2인터내셔널’ 멤버로도 활동한다. 승규는 “내 미래는 이 작은 ‘하드디스크’에 담겨 있다”고 했다. 가장 우울했던 날 남겼던 기록들.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소통하는 유튜버가 되는 게 그의 새로운 꿈이다.
동아일보가 마주한 청년 100명은 유명 인사나 촉망받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위로를 건네기도 조심스러운 시련을 겪은 청년도 여럿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를 발판 삼아 힘겹게 한 발씩 내딛고 있다. 고난은 그들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청년은 더 성숙해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게 두려운 게 아니다. 끝마치지 못한 하루를 서성이는 나 자신이 안쓰러워 힘들다. … 나는 도대체 얼마나 더 이렇게 긴 밤을 혼자 보내야 하나.” 가슴에 피멍이 든 문장들. 켜켜이 쌓인 글들은 어느새 일곱 권 분량이 됐다.
5년 동안 글을 써내려가며 도연은 깨달았다. 혼자인 줄 알았던 시간들. 그 곁에는 늘 가족이 있었다는 걸. 우울하고 괴로운 얘기만 가득했던 일기장엔 조금씩 햇살이 비쳐왔다. 끝까지 자신을 지켜준 가족을 담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상처를 매만진 그는 이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을 꿈꾼다.
“언젠가는 이 일기장에 쓴 글들을 모아 에세이로 출간하고 싶어요. 어디선가 친구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하사였던 하재헌(26)은 두 다리를 잃었다. 용맹하던 군인이 다시는 걷지 못하다니. 하지만 중사 진급 뒤 지난해 1월 제대한 재헌은 굴하지 않았다. 장애를 딛고 운동선수가 됐다. 같은 해 10월 제39회 서울장애인전국체육대회에서 조정 금메달을 따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한다.’ 별것 아닌 듯한 이 말에 꿈이 담긴 청년도 있다. 2014년 탈북한 새터민 문해룡(22)은 그 한 문장을 실천하려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2017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북한에나 돌아가’란 주변 조롱에 상처도 컸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룡은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해 취업도 하고, 훌륭한 인품을 갖춘 어른이 되겠다”고 했다.
2020년. 해룡은 유한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새내기 해룡은 두 번째 돌잡이 아이템으로 ‘물’을 꼽았다. “어디에나 자연스럽게 잘 스며들고, 생명을 피어나게 하는 존재잖아요.” 해룡은 대한민국에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무형문화재 스승 따라… 조선 가곡 배우고 장도 만들어 ▼
“뿌리를 찾는다” 전통 잇는 청년들
국악인, 역사학도, 책방 사장, 문헌연구원….
얼핏 밋밋해 보일 수도 있다. 청년과 동떨어진 분야 같기도 하다. 하지만 척박한 여건에도 전통을 계승하고, 전문 기술의 명맥을 이으려는 청년들이 있다. 윗세대가 쌓은 성과를 겸손하게 배우고, 그들의 경험을 발전시킬 ‘밀레니얼 전문가’를 향해 달려간다.
국악인 박희수(30)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즐기던 ‘가곡(歌曲)’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다. 그는 “가곡은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고 인지도도 높지 않다. 그래도 소중한 전통을 잇는 국악인으로 남고 싶다”며 ‘마이크’를 돌잡이 아이템으로 택했다. 그는 지난해 6월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김영기 명인의 이수자가 됐다. 중학교 때 처음 가곡을 배웠던 시절 꿈꿨던 순간이 현실로 이뤄진 셈.
박남중(28)은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청년이다. 할아버지 박용기 선생(1931∼2014)과 아버지 박종군 장도장(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을 따라, 칼집 있는 작은 칼 ‘장도(粧刀)’를 만든다. 기초를 갈고닦고 있지만, 장도를 알리는 데 기여하겠단 포부는 뜨겁다. 남중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며 많은 전통기술을 잃어버렸다. 청년도 전통을 복원하고 부흥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대학원 진학하며 큰맘 먹고 샀어요. 아직 어렵지만, 언젠간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힘든 여정이라도 잘 헤쳐 가겠습니다.”
디지털시대에 종이책을 고집하는 청개구리 청년도 있다. 책방 사장 서장원(28)은 독립서점을 운영한다. 그는 책과 세상과 소통을 담을 ‘책장’을 두 번째 돌잡이 아이템으로 내세웠다.
▼ 다양성-기술발전 기대감, 양극화-과잉경쟁은 우려 ▼
청년들이 생각하는 ‘2050년 한국’
‘다양성 vs 양극화.’
또 다른 100년을 열어갈 청년 100인은 ‘2050년 한국 사회를 내다봤을 때 기대하는 것과 우려하는 것’을 묻자 두 단어를 가장 많이 꼽았다.
먼저 우려하는 미래로는 무려 28명이 ‘빈부와 세대, 정보, 기술 등 격차와 갈등’을 꼽았다. 강산 영화감독(33)은 “예술학교에서 경험해 보니 형편이 넉넉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만든 작품 수준의 차이가 불과 5년 만에 훨씬 더 벌어졌더라. ‘경제력이 창의력’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25명은 ‘개인주의 심화로 인한 과도한 경쟁’을 고민했다. 비인간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인간의 교류란 기본적인 근간마저 무너질까 저어했다. 17명은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를, 12명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걱정하기도 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레스토랑 ‘녘’을 운영하는 백승민 대표(31)는 “갈수록 공기도 나빠지고 감염병도 창궐하면 다음 세대는 보건용 마스크가 아니라 산소공급용 ‘가면’ 같은 걸 쓰고 다녀야 하진 않을까”라고 말했다.
기대하는 미래로는 33명이 ‘다문화사회, 성소수자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외국어대에서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하는 미국인 칼 웨인(한국명 권민규·24)은 “대뜸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는 이가 아직도 있긴 하다. 하지만 갈수록 피부색이 다른 이웃에게도 ‘오픈 마인드’를 지닌 성숙한 한국인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19명)과 ‘공정성과 투명성 등 시민의식 발전’(15명), ‘복지 수준의 향상’(14명)을 꼽은 청년도 많았다. 기획재정부의 심승미 사무관(29)은 “예전엔 ‘개인사’라며 눈감았던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있다. 사회가 점차 투명해지고 도덕성도 높아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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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주 기자(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