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0주년/청년 100인의 ‘두 번째 돌잡이’] <중> 틀을 깬 청년들
경찰청 사이버안전과의 ‘청년’ 이상은 경감(34)은 요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추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지만 없는 시간을 쪼개 방송통신대에서 임상심리학 수업도 듣는다. 우범지역에 비상벨을 설치하는 것처럼 사이버 공간에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를 도입하고픈 ‘푸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 발짝씩 내딛는다.
동아일보가 만난 19∼34세 청년 100명은 누구도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다. 크건 작건 한 발씩 내딛고 세상과 부딪쳐 나갔다.
▼ “n번방 다시는 없게… 사이버 세상에 비상벨 놓을 거예요” ▼
이상은 경감이 제시한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는 아직 일반인에겐 생소한 개념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범 지역에 범죄율을 낮추는 환경을 조성하는 걸 일컫는다. 폐쇄회로(CC)TV나 비상벨, 가로등 등을 설치해 범죄가 벌어질 분위기를 차단하듯, 사이버 세상에도 범죄예방장치를 만들자는 취지다. 이 경감은 “최근 n번방 사건처럼 온라인에선 범죄자가 피해자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려는 시도가 많다. 잠재적인 범죄자와 피해자의 심리를 분석해 사전에 범죄를 막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절실하다”고 했다.
○ 주어진 틀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해 독창적인 길을 뚫기도 한다. ‘후불제 교육’이란 개념을 도입한 소셜벤처기업 ‘학생독립만세(학독만)’의 장윤석 대표(32)는 “돈 있어야 사교육 받는다”는 통념을 뒤집었다. 먼저 교육받은 뒤 비용은 나중에 내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대학입시 과외로 시작한 사업은 최근 취업준비생을 위한 프로그래밍, 디자인 교육으로 확장됐다. 장 대표는 “비용 걱정 없이 모든 학생이 배움을 누리는 환경을 만들겠단 초심을 지키려 한다. 처음으로 후불제 교육을 받아 대학에 간 학생이 보내준 소중한 ‘손 편지’가 두 번째 돌잡이 아이템이다”고 했다.
염승헌 거북선컴퍼니 대표(26)는 동대문 의류 시장에 핀테크를 이식했다. 거북선컴퍼니가 개발한 ‘터틀 체인’은 동대문을 무대로 하는 B2B(Business to Business) 결제 플랫폼이다. 보스턴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염 대표는 하버드대 내 정보기술(IT)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우연히 들렀던 동대문시장에서 솟구치는 활기에 감명 받은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입사가 보장됐지만 시장에 뛰어들었다.
“동대문은 매일매일 수백억 원어치 옷들이 전국은 물론이고 세계로 팔려나가는 곳입니다. 하지만 거래방식은 오랫동안 ‘수기’로만 이뤄졌죠. 규모가 큰 동대문에서 B2B 플랫폼이 성과를 얻는다면, 농축수산물 등 다른 분야에도 충분히 접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부동산 스타트업 ‘집토스’의 이재윤 대표(29)는 ‘복비(부동산 중개수수료)’의 기존상식을 뒤집었다. 세입자에게는 받지 않고 집주인에게만 받는 신개념 공인중개사업을 일궜다.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부동산 중개를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고객을 위해 빠르게 현장을 누빌 수 있게 도와주는 ‘스쿠터’를 돌잡이 아이템으로 꼽았다.
○ 정해진 길로만 간다면 재미없잖아요
‘성 역할’이란 고정관념 역시 청년들은 뛰어넘고자 한다. 춘해보건대 간호학과 ‘남학생’ 김찬양(26)은 “남성 간호사는 일찍 이직한다는 편견을 부수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남성 간호사는 병원에 오래 근무하지 않고 소방공무원 등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병원에서도 남성 간호사를 그리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수간호사도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요. 전 ‘응급 분야에 특화된 간호사’가 꿈입니다. 중책을 맡을 수 있는 전문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오랫동안 일하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겠습니다.”
여학생 남시안(20)은 반대로 전통적 ‘남초’인 아주자동차대에서 자율주행차를 공부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동차 앞부분이 사람 얼굴처럼 느껴졌다”는 시안은 완벽한 자율주행이 가능한 자동차 개발을 꿈꾼다. 스스로를 ‘개발자 꿈나무’라고 표현한 그는 “개발은 실패의 연속이다. 단기간에 성공을 다그치지 말고, 실패에 관대한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처음으로 여성 복싱에서 올림픽출전권을 따낸 임애지(20) 역시 ‘여자 복서’들이 마주한 편견에 도전한다. “남성이 복싱을 하면 다들 멋있다고들 하죠. 그런데 저나 여성이 권투를 하고 있다고 하면 ‘아프지 않냐’ ‘얼굴 다칠 텐데 왜 하느냐’고 먼저 물어봐요. 남성이나 여성이나 맞으면 아프고 다치면 힘든 거 똑같지 않나요? 이 ‘복싱 글러브’를 끼고 매일매일 땀 흘리며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이 저는 정말 좋습니다.”
▼ ‘英재규어’ 첫 亞여성 디자이너… 피자로 ‘제2의 맥도날드’ 도전 ▼
“한국은 좁다” 세계로 가는 청년들
청년들이 꾸는 꿈은 크고 넓었다.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벌써부터 해외 무대 진출이란 구체적 목표를 실천해 나가는 청년도 상당했다.
영국 자동차 ‘재규어’의 사상 첫 아시아 여성 디자이너 박지영(32). 그의 사무실 책상엔 1961년 선보여 지금도 사랑받는 클래식 카 ‘재규어 E타입’ 모형이 놓여 있다. 지영은 E타입처럼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세계 어디에서도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을 가진 자동차” 디자인을 꿈꾼다.
‘제2의 맥도날드’에 도전하는 청년도 있다. ‘고피자’를 운영하는 임재원 대표(31)는 지난해 인도에 이어 이달 싱가포르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고피자는 제조 공정을 단순화해 혼자서 운영 가능한 화덕피자. 국내외 60여 개 가맹점을 둔 임 대표는 푸드트럭을 끌며 꿈을 키우던 시절에 썼던 ‘캡 모자’를 두 번째 돌잡이 아이템으로 꼽았다. “사무실 한 칸 없이 홀로 고생했던 그때의 끈기와 근성이 앞으로도 내 꿈을 이뤄줄 열쇠가 될 겁니다.”
백화점 패션편집숍에서 바이어로 일하는 김주희(30)의 꿈은 온라인 글로벌 패션쇼핑몰 ‘네타포르테(NET-A-PORTER)’ 같은 세계적인 패션 플랫폼. 주희는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모아둔 각종 참고자료와 사진들이 담긴 ‘아이패드’를 미래를 비추는 아이템으로 꼽았다. 그는 “부지런히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겨 10년 안에 한국의 ‘네타포르테’를 만들겠다”고 당차게 얘기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정양환 사회부 차장 ray@donga.com
조건희 김소민 신지환(사회부) 김수연(정책사회부)
김형민(경제부) 신무경(산업1부) 김재희(문화부)
김은지(산업2부) 조응형(스포츠부) 홍진환(사진부)
이원주 기자(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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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주 기자(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