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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유권자 우롱하는 위법·파행 선거운동과 무기력한 선관위

입력 | 2020-04-03 00:00:00


21대 총선의 선거운동 첫날인 어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각자의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미래한국당과 함께 공동 출정식을 했다. 모(母)정당과 비례위성정당이 ‘한 몸’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모정당과 위성정당 등 2개 정당이 공동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선거운동을 하면 공직선거법상 유사 기관 설치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유권해석을 했다. 거대 정당이 누더기 선거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비례위성정당이라는 꼼수 경쟁을 하더니 이젠 대놓고 위법 선거운동을 벌이려는 것이다.

여야의 비례위성정당은 급조된 정당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시민당은 그제 선관위에 모정당의 공약을 거의 그대로 베낀 총선 공약을 제출했다가 논란이 되자 철회했다. 민주당의 또 다른 위성정당으로 불리는 열린민주당은 선관위에 아예 총선 공약을 제출하지도 못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도 ‘희망경제 살리기’ ‘문재인 정부 안보정책 폐기’ 등 비슷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정당의 정책공약은 정책선거를 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인데 이런 파행은 유권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도 저버린 것이다. 겉으로나마 유권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선거철에 이 정도라면 총선 후 이런 정당이 어떤 식으로 국민들을 대할지 걱정스럽다.

코로나 사태 와중이라 해도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의 권리는 무시되다시피 하고 있다. 많은 해외 공관에서 선거 사무가 중단되면서 8만 명이 넘는 재외선거 유권자들이 투표를 못하게 됐다. 두 달 전부터 코로나 사태의 파장이 예견됐는데도 선관위와 정부의 안이한 대응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 캐나다 교민 25명은 선거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물론 최소 4만 명을 넘을 자가 격리자도 사실상 투표할 길이 막힌 상태다. 검찰이 자가 격리 이탈자에 대해 기소를 하는 마당에 자가 격리자들이 투표장에 나올 경우 구체적인 단속 지침이 없어 현장에선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국민 생명이 걸린 코로나 방역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 없지만 유권자들의 참정권 또한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 권리로 적극 보장해야 한다. 선관위나 정부가 투표율 제고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기보다는 투표장 환자 발생 책임을 면하려는 데 급급한 것은 아닌가. 거대 정당의 몰염치와 선관위의 무신경에 유권자들이 더 이상 우롱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