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재에 코로나19 겹친 중첩 위기… 낡은 이중경제 시스템으론 돌파 못해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대외경제 관계를 최소화하는 폐쇄적 북한 경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코로나19의 파장은 미국과 한국 등의 개방경제보다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수년 동안 국제사회의 고강도 경제제재를 받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최근까지 북한 경제가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당국이 그동안 축적해 온 보유 달러를 풀어 수입을 계속한 결과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 동요를 막기 위해 보유 외환을 풀어 쓰던 차에 코로나19 사태가 덮친 형국인 셈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재룡 내각 총리가 최근 여러 지역을 돌며 경제를 챙기는 모습이 노동신문에 자주 보도되는 것은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나란히 마스크를 쓰고 평양종합병원 건설현장을 찾았다. 지난달 17일에도 마스크를 쓴 채 사리원 유기질 복합비료 공장과 남포 의료기구 공장을 방문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현재 박봉주는 노동당의 경제정책 수장, 김재룡은 내각의 경제실무 수장으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봉주는 김정일에서 김정은 시대로 이어지는 북한 경제위기의 정책 사령탑이다. 김정일의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인 ‘7·1 경제관리 개선’(2002년)과 종합시장 도입(2003년) 조치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자 2003년 9월 내각 총리에 발탁됐다. 이후 과감한 시장화와 분권화 조치를 추진했지만 노동당 내 보수파의 역풍을 맞았다. 당 간부들은 “시장이 번지면서 김일성 주석의 항일운동 신화인 구호나무가 중국으로 밀거래되기에 이르렀다”고 공격했다. 결국 2005년 하반기를 정점으로 박봉주의 개혁조치는 막을 내렸고 김정일은 2007년 4월 그를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강등시켰다.
박봉주는 김정은 체제 출범 후인 2013년 4월 다시 내각 총리로 재기했다. 김정은은 그를 앞세워 시장화와 분권화 개혁정책을 조용히 추진했지만 무모한 핵·미사일 정책을 강행해 지금의 경제봉쇄를 자초했다. 지난해 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는 당시까지의 개혁정책에서 후퇴해 ‘위기상황의 정면돌파’를 강조하며 제한된 자원과 시장에 대한 당과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좌경화했다.
최근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심각한 자금난으로 북한 관리들이 돈만 주면 기밀문서라도 밀수출할 판”이라는 말이 나온다. 잘못된 정책이 경제난을 악화시키고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 박봉주가 이번에는 시장의 이름으로 희생양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