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가 최초로 최근 미국의 유명 라이브 프로그램 ‘Live on KEXP’에 출연한 밴드 ‘세이수미’. 왼쪽부터 하재영 최수미 김병규 임성완. 사진 출처 ⓒCarlos Cruz
임희윤 기자
지난달 26일 부산 출신 밴드 ‘세이수미’가 미국의 유명 콘서트 프로그램 ‘Live on KEXP’(QR코드)에 출연한 것이다. KEXP는 워싱턴주 시애틀의 유서 깊은 공영 라디오 방송이다. 워싱턴주립대 학생 네 명이 의기투합해 만들어 1972년 첫 전파를 쏘아 올렸다. 당시 이름은 KCMU. 주류 팝음악 대신 대안 문화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이 인디 록을 주로 틀었다. 그 취지에 공감해 ‘사운드가든’ ‘머드허니’ 같은 전설적 밴드 멤버들이 자원봉사 DJ를 맡기도 했다.
#1. 미국 음악계에서 시애틀의 위상은 독특하다. 톰 행크스, 메그 라이언 주연의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년)을 채운 재즈나 컨트리보다는 펄떡거리는 록으로 유명하다. 지미 헨드릭스(1942∼1970)의 고향이자 1990년대를 풍미한 그런지(grunge) 장르의 배양지이기도 하다. 사시사철 안개와 구름, 비가 많은 이곳은 폭발적인 대안 음악의 산파 역할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디 록 음반사 ‘서브 팝’도 시애틀에 있다. 1990년대 세계를 뒤집은 밴드 ‘너바나’가 처음 계약한 회사 말이다.
#3. 그러고 보니 시애틀과 부산은 닿아 있다. 태평양을 매개로 아주 멀리 희미하게 서로 연결된 해안도시다. 세이수미는 부산 광안리에서 2013년 결성됐다. 멤버들은 음악 연습을 하다 지치면 해변으로 걸어 나와 쉬곤 했다. 그때 보며 영감을 얻은 다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도, 영국 런던의 타워브리지도 아닌 광안대교다. 남한 라이브 음악의 메카라는 서울 마포구와도, 국가 인구의 절반이 몰린 수도권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일전에 만난 멤버들은 “서울 홍익대 앞의 빠른 유행에서 떨어져 묵묵히 음악을 만든 게 어쩌면 세이수미 스타일을 형성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4. ‘Live on KEXP’의 세이수미 편을 보다 몇 번이고 나도 몰래 아빠 미소를 지었다. 진행자는 “한국 부산에서 멀리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말로 세이수미를 맞았다. “세이수미는 한국에서 어느 정도로 유명한가요” “부산은 어떤 곳인가요” 같은 진행자의 질문에 최수미(보컬 겸 기타)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 같은 영어로 더듬더듬 답했다. 하고픈 말을 다 못 했다. ‘프렌즈를 보며 영어를 익혔죠’ 같은 여유로운 답은 없었지만 그 모습이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5. 연주가 시작되면 세이수미는 다른 사람들이 됐다. 긴장과 수줍음은 뜨거운 록 앞에 지체 없이 기화했다. 시애틀의 심장에 터프한 록의 박동을 거침없이 박아 넣었다. 지글거리는 기타 사운드, 투박하게 돌진하는 베이스기타와 드럼…. 네 곡 중 특히 6분이 넘는 ‘Just Joking Around’가 압권. 살랑대며 시작해 곧 도시를 집어삼키려는 높은 파도처럼 출렁이는 후반부까지 드라마틱하게 몰아가는 록. 명멸하는 수많은 작은 파란 전구로 3면을 두른 무대, 악기와 보컬이 뿜는 에너지를 절묘하게 청각적 공간에 배치한 사운드 믹스는 과연 KEXP다웠다. 그렇게 시애틀은 마치 오랫동안 부산을 기다려 왔다고 말하려는 듯 세이수미의 음악을 열렬히 환영했다.
#6. 한때 국내 음악계에는 이런 얘기가 있었다. ‘한국 인디음악은 결국 국악처럼 이국적 요소와 결합하지 않으면 영미권 시장에 먹히기 힘들다’는…. 잠비나이, 씽씽, 악단광칠 등이 예가 됐다. 세이수미의 KEXP 라이브를 보니 눈앞의 얇은 막 하나가 걷히는 기분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