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마스크가 대부분이던 2003년 봄,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 영국에서 처음으로 직수입한 일회용 황사 전용 마스크 4000개가 하루 만에 품절돼 화제가 됐다. 0.3μm(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입자를 95%까지 걸러낼 수 있다는 제품인데, 황사와 함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우려가 커지자 동이 난 것이다. 마트 측은 1만5000장을 추가 주문했지만 언제 올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전 세계에서 동시에 1500만 장이나 주문이 폭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사와 감염병이 고기능 마스크 시대를 연 것이다.
▷그냥 마스크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요즘 마스크는 고수준이다. 0.4μm 크기 입자를 94% 이상 차단하는 KF94 마스크가 평범할 정도다. 그것도 못 미더워서 0.02∼0.2μm 입자를 95% 이상 차단하는 미국 N95 호흡기를 쓰기도 한다.
▷이들 명품업체의 마스크 생산은 위기 극복 차원이지만 마스크로 감염병 예방과 패션을 동시에 노리는 업체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의 한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공기필터가 장착된 마스크는 70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스포츠용품 회사는 운동할 때 쓸 수 있는 마스크도 만들고 있다.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마스크의 신세계가 열리고 있는데, 어쩌면 원래 마스크의 목적으로 되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