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꽃가루의 모습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뒤 색을 입혔다. 난양공대 제공
꽃은 누군가에겐 봄의 전령, 사랑의 매개체지만 소재를 연구하는 과학자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최근 과학자들은 인류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소재를 꽃에서 찾고 있다. 꽃의 수술이 만드는 꽃가루는 동물로 치면 정자의 역할을 한다. 바람이나 곤충을 통해 암술에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가벼우면서도 견고하다.
꽃가루의 겉모습(왼쪽 그림)과 내부 구조(가운데)를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했다. 견고하면서 속이 비어서 약물을 주입해 체내에 운반하거나, 오염물을 흡수해 제거하기에 좋다. 오른쪽 그림은 일반적인 꽃가루 구조. 마치 벽돌 같은 물질이 껍질을 단단히 이루고 있으며 수분이 없을 때 더 견고하게 뭉쳐 단단해진다.
왼쪽부터 조남준 난양공대 교수, 박수현 연구원, 수브라 수레시 난양공대 총장. 난양공대 제공
조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자연이 준 재료를 최소한의 공정과 최소한의 변화를 가해 인류가 쓸 수 있는 재료로 만들고자 연구를 시작했다”며 “꽃가루를 이용한다고 해도 생태계에 피해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진 꽃가루를 활용해 환경에도 도움을 주고 인류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껍질이 부드러워진 꽃가루는 응용할 곳이 많다. 환경 분야가 대표적이다. 영국 헐대 연구팀은 속이 빈 제라늄이나 히비스커스 등의 꽃가루에서 알레르기 단백질과 유전물질을 제거해 스펀지처럼 구멍이 많이 나고 속이 빈 구조로 만들어 하수 속 오염물을 흡수 또는 흡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꽃가루 표면에 산화철을 입히는 등 가공을 하면 비료 오염의 주된 원인인 인산을 골라 제거할 수 있는 등 환경 정화에 정교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해바라기 꽃가루를 염기성 용액에 배양했을 때 시간에 따른 벽 구조의 변화를 살펴봤다. 오래될수록 부드러운 상태로 변한다.
재료로서 활용할 여지도 많다. 신체 조직에 독성이나 면역 거부반응이 없어서 상처가 난 부위를 치료하는 피복재나 보철재료, 생체이식용 전자장치에 활용할 수 있다. 또 고분자 젤이나 종이, 스펀지 등으로 가공할 수 있다. 3차원(3D) 프린팅 기술과 결합하면 플라스틱을 대체할 소재로도 사용된다. 수레시 총장은 “꽃가루는 지속 가능하며 경제성이 높은 재료이면서 광범위하게 활용될 잠재성을 갖추고 있다”며 “음식 포장재, 휘어지는 전자소재, 폐기름 흡착재 등 다양한 응용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