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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불청객’ 알레르기 유발 꽃가루, 병주고 약준다?

입력 | 2020-04-06 03:00:00


다양한 꽃가루의 모습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뒤 색을 입혔다. 난양공대 제공

요즘처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이라는 당나라 시가 어울리는 봄도 드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면서 예년과 같은 활기 넘치는 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간 세상이 잔뜩 움츠러든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올해도 어김없이 산과 들에는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목련과 매화,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진 자리에 이제는 벚꽃이 한창이다. 그 뒤를 이어 영산홍과 철쭉, 모과 등이 피고 지면 어느덧 수목 빛이 짙어지는 초여름으로 들어선다.

꽃은 누군가에겐 봄의 전령, 사랑의 매개체지만 소재를 연구하는 과학자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최근 과학자들은 인류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소재를 꽃에서 찾고 있다. 꽃의 수술이 만드는 꽃가루는 동물로 치면 정자의 역할을 한다. 바람이나 곤충을 통해 암술에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가벼우면서도 견고하다.

꽃가루의 겉모습(왼쪽 그림)과 내부 구조(가운데)를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했다. 견고하면서 속이 비어서 약물을 주입해 체내에 운반하거나, 오염물을 흡수해 제거하기에 좋다. 오른쪽 그림은 일반적인 꽃가루 구조. 마치 벽돌 같은 물질이 껍질을 단단히 이루고 있으며 수분이 없을 때 더 견고하게 뭉쳐 단단해진다.

대부분의 꽃가루는 속이 비어 있다. 구조가 일종의 초소형 캡슐과 같아서 재료과학자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연구자들은 사람 몸에 병을 일으키는 조직에 약물을 직접 전달해 부작용은 줄이고 약효는 높이는 약물 전달체에 적합한 후보로 꽃가루를 꼽는다. 또 일부 학자들은 오염물을 흡수해 제거하는 초미니 환경정화로봇처럼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부 사람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점이 있지만, 간단한 방법으로 알레르기는 줄이고 재료로서의 기능성은 높이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활용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조남준 교수와 송주하 교수, 박수현 연구원팀은 이달 19일 해바라기와 양귀비꽃의 꽃가루 껍질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백질을 제거하고 물질을 옮기는 운반체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왼쪽부터 조남준 난양공대 교수, 박수현 연구원, 수브라 수레시 난양공대 총장. 난양공대 제공

연구팀은 꽃가루에 화학적 자극을 줘 단단한 꽃가루 입자를 부드러운 젤 입자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꽃가루는 건조한 환경에서는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표면의 구멍(발아구)을 닫고, 반대로 암술에 도착해 수분이 공급되면 껍질 바깥쪽 막이 느슨해지면서 발아구를 열어 수정을 한다. 이 과정은 꽃가루 내부의 효소에 의해 조절된다. 연구팀은 비누를 제조할 때와 비슷한 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이 과정을 인위적으로 일으켰다. 그 결과 단단한 꽃가루 껍질을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수축이나 팽창을 할 수 있는 부드러운 재료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의 이번 연구에는 재료과학자인 수브라 수레시 난양공대 총장도 참여했다.

조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자연이 준 재료를 최소한의 공정과 최소한의 변화를 가해 인류가 쓸 수 있는 재료로 만들고자 연구를 시작했다”며 “꽃가루를 이용한다고 해도 생태계에 피해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진 꽃가루를 활용해 환경에도 도움을 주고 인류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껍질이 부드러워진 꽃가루는 응용할 곳이 많다. 환경 분야가 대표적이다. 영국 헐대 연구팀은 속이 빈 제라늄이나 히비스커스 등의 꽃가루에서 알레르기 단백질과 유전물질을 제거해 스펀지처럼 구멍이 많이 나고 속이 빈 구조로 만들어 하수 속 오염물을 흡수 또는 흡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꽃가루 표면에 산화철을 입히는 등 가공을 하면 비료 오염의 주된 원인인 인산을 골라 제거할 수 있는 등 환경 정화에 정교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해바라기 꽃가루를 염기성 용액에 배양했을 때 시간에 따른 벽 구조의 변화를 살펴봤다. 오래될수록 부드러운 상태로 변한다.

조 교수팀도 지난달 소나무, 동백, 해바라기 등 9종의 꽃가루를 이용해 오염된 물속에서 중금속 등 오염물을 제거하는 환경 정화 마이크로로봇을 만들어 ‘어드밴스트 펑셔널 머티리얼스’에 발표하기도 했다.

재료로서 활용할 여지도 많다. 신체 조직에 독성이나 면역 거부반응이 없어서 상처가 난 부위를 치료하는 피복재나 보철재료, 생체이식용 전자장치에 활용할 수 있다. 또 고분자 젤이나 종이, 스펀지 등으로 가공할 수 있다. 3차원(3D) 프린팅 기술과 결합하면 플라스틱을 대체할 소재로도 사용된다. 수레시 총장은 “꽃가루는 지속 가능하며 경제성이 높은 재료이면서 광범위하게 활용될 잠재성을 갖추고 있다”며 “음식 포장재, 휘어지는 전자소재, 폐기름 흡착재 등 다양한 응용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