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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도’ 머리 숙이는 후보들… 그 조아림의 초심 잊지 말길[광화문에서/길진균]

입력 | 2020-04-06 03:00:00


길진균 정치부 차장

“안 해 본 사람은 몰라. 정말 다시 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고민이야.”

2016년 4월 총선 직후다. 국회 입성에 성공한 관료 출신 초선 의원 A는 “유세는 할 만했느냐”는 질문에 너스레를 떨었다.

“길 한가운데 서서 지나는 사람, 오토바이, 자동차를 향해 끊임없이 ‘90도 인사’를 하는데, 눈이라도 마주쳐 주면 그나마 다행이지…. 그렇게 매일 수십 km를 걸었다.” 그는 당시의 당혹스러움과 고통을 이같이 전했다.

4·15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공식 선거운동이 2일 시작됐다. 후보들은 이번 총선 유세를 두고 “조용하지만 가장 치열하고 힘든 선거운동”이라고들 한다.

여느 선거 때와 다름없이 후보들은 아침 출근길 인사로 일정을 시작한다. 다만 유세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귀를 맴도는 선거 로고송이나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마이크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떼로 줄지어 다니는 선거운동원들과 율동을 곁들이며 지지를 호소하는 젊은 응원단의 모습도 눈에 띄게 줄었다. 명함을 들고 조용히 후보를 따르는 한두 명의 수행원이 전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때문이다.

지역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후보들은 대체로 오전 4∼5시에 일어나 그날 일정을 점검하고 오전 6∼7시 출근인사를 한다. 이후 시장 종교시설 등 지역구 주요 거점 돌기, 유세차 타기, 토론회 간담회 등 행사 참석의 일정을 반복한다. 다시 오후 6∼7시 퇴근인사 그리고 밤늦은 시간까지 지역구 거점 돌기의 일과가 이어진다. 이동 중 검은색 승용차 이용은 금물이다. 골목골목을 직접 걸어야 한다. 유세 과정에서 “먹고살기 힘들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상인과 취객의 면박은 일상이다.

과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심리적, 물리적으로 느끼는 피로감이 예년보다 더하다고 후보들은 입을 모은다. 후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유권자들과 1m 이상 거리를 둔 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기 침체 속에서 선거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명함 한 장 나눠주는 것도 쉽지 않다. 길모퉁이에서 유권자들에게 둘러싸여 공약을 설명하며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선거운동을 병행하지만 유권자도 수행원도 응원단도 없는 ‘3무 유세’ 속에 후보들은 웬만해선 힘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아침저녁으로 피켓을 몸에 두르고 샌드위치맨으로 변신해 쉬지 않고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후보들은 6g에 불과한 금배지만 달면 바뀔 것 같은 생활, 장관급 대우를 받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의 신분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눈길 주지 않는 이들에게 보내는 ‘90도 인사’, 상인과 주민들의 면박 등 유세 기간 동안 후보들이 겪는 이런 고통들이 의미 있는 결실로 맺어졌으면 한다. 다만 싸늘한 민심을 향한 수만 번의 머리 조아림의 의미와 그 초심도 꼭 기억하길 바란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