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는 정당이 없네요. 모르는 문제 풀 듯 찍어야 할 것 같아요.”
2002년 3월생으로 15일 총선에서 처음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이모 군(18). 6일 오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만든 ‘참고용’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보여주자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시간 날 때마다 정치 뉴스를 챙겨 봤다는데도 계속 머리를 긁적였다. 이 군은 “충격적이다. 정당이 이렇게 많은 것도, 알고 고를 정당이 없다는 것도 놀랍다”고 했다.
○ “이름 특이한 정당이나 찍을까…”
동아일보가 지난달 말부터 만난 학생 유권자 수십 명은 모두 “선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35개 정당이 담긴 모의 투표용지를 보고는 대부분 “아는 정당이 거의 없다”고 했다. 강모 군은 용지를 보기 전엔 “미래통합당을 찍겠다”고 했다가 “왜 이름이 없느냐. 당황스럽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응원한다는 이모 양은 용지를 보다가 “그냥 이름 특이한 정당이나 찍고 나올까…”라며 혼잣말을 했다.
사실 이런 ‘깜깜이 선거’ 분위기는 어느 정도 예상돼 왔다. 인터뷰한 학생 유권자 대부분이 “선거정보를 접하거나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윤모 군은 “솔직히 교실에서 정치 관련 수업 자체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고교 필수 과목인 ‘통합사회’에선 선거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인권 보장과 헌법’ 단원에 겨우 몇 줄 언급될 뿐이다. 서울의 한 사회교과 교사는 “선진국 수준에 맞춰 10대의 선거 참여를 보장한 건 좋은데 정작 교육 시스템은 제자리걸음”이라며 “기본적인 선거 개념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밀려’ 투표하는 셈”이라고 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는 “10대가 선거에 참여하는 국가는 대부분 중고교부터 선거를 포함한 정치 관련 교육을 체계적으로 한다”고 지적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선거 연령을 낮추는 건 세계적 추세지만 급히 추진하면서 부작용이 생겼다”며 “당장 온라인 개학 중에라도 단기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치권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총선에 참여하는 고등학생 이하 유권자는 약 12만5000명. 만 18세를 기준으로 하면 54만 명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이들을 타깃으로 한 정책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임모 군은 “여야 할 것 없이 공약이 경제나 복지 같은 거대 담론만 가득하더라”며 “교육이나 10대들이 관심이 많은 분야를 다룬 공약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했다. 김모 양도 “우리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거 같다. 그래서인지 더 이해가 안 가고 선택하기 어렵다. 남의 잔치에 온 불청객이 된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악재였다. 당장 참정권이 생겼지만 선거 관련 교육이나 홍보가 이뤄질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었다. 당초 교육부는 선거 관련 홍보물을 학교에 배포하려고 했지만 개학이 연기되며 대부분 취소됐다. 윤 교수는 “정부나 정당이 선거법은 바꿔놓고 제대로 안착할 환경 조성은 나 몰라라 한다”며 “학교도 중립성 운운하며 내버려둘 게 아니라 편향되지 않은 올바른 정치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승현 기자byhuman@donga.com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