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식량 수출 제한에 나서는 국가들이 잇따르면서 세계적인 식량 위기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최대 밀 생산 국가인 러시아는 지난달 20일부터 열흘간 모든 곡물 수출을 임시 제한했고, 세계 3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새로운 쌀 수출 계약을 중단했다. 캄보디아도 5일부터 쌀 수출을 중단했다.
▷사람 이동이 제한돼 농사를 지을 일손도 부족해졌다.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는 이동 제한으로 인해 인력이 없어 밀 수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은 동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오는 해외 노동자에게 농사를 맡겼으나 올해는 수확에 나설 일손이 없다. 멕시코 노동자들을 주로 활용해온 미국도 과일과 채소 수확이 어려워졌다.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돌 정도로 비축미가 많아 식량 위기를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쌀은 104.7%로 자급하고 있지만 전체 곡물 자급률은 23%로 세계 평균 101.5%에 크게 못 미친다. 밀은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콩 자급률은 24.6%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한국은 식량 안보가 취약한 국가로 분류된다.
▷다만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농작물 작황이 좋아 식량 재고가 충분하다는 점을 들어 ‘현재의 곡물 시장 불안은 일시적이며 세계적인 식량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식량의 절대량이 아니라 ‘식량 정치’다. 각국이 식량 수출을 제한하고 사재기에 나설 경우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경고다. 그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코로나19의 무서운 확산 기세를 보면 그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예측인 것 같다.
이태훈 논설위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