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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가 심판해야 할 꼼수 정치[여의도 25시/황형준]

입력 | 2020-04-07 03:00:00


2일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왼쪽 사진)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경기 수원시 경기도당에서 각각 4·15총선 공동 출정식과 선거대책위원회의를 열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황형준 정치부 기자

지난주 더불어민주당에서 더불어시민당으로 당적을 옮긴 A 의원과 점심을 함께 했다. 여러 차례 만난 의원이었지만 명함이 바뀌었는지 궁금해 일부러 “명함을 달라”고 했다. A 의원이 당적을 바꾼 건 일주일이 지난 시점. 하지만 명함에는 ‘더불어민주당 A 의원’으로 돼 있었다. 기자가 “아직 명함은 안 바꾸셨다”고 하자 A 의원은 “볼펜으로 줄 긋고 고쳐서 재활용해야겠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뜻하지 않게 호적은 정리했지만 ‘마음’까지 정리되진 않은 듯했다. 그는 “애초에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을 허용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잘못”이라면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정치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자조(自嘲)했다.

지난해 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공직선거법이 통과된 이후 여의도에는 전대미문의 ‘꼼수 정치’가 난무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옛 자유한국당)은 ‘4+1’협의체가 선거법 통과를 강행하자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었다. 위성정당 설립 금지 규정이 없는 현행법의 맹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후 미래한국당에 ‘의원 꿔주기’를 하더니 선거 직전에 교섭단체 구성 요건인 20명을 채웠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의 의원 꿔주기 이후 20년 만에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통합당을 비판하던 민주당은 미래한국당이 20석 이상 의석을 가져가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앞세워 방향을 틀었다. 전당원 투표를 거쳐 동의를 얻은 민주당은 일부 시민사회 인사를 앞세워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정당을 한 달 만에 뚝딱 만들었다. 급기야 총선 불출마 의원들을 미래한국당으로 이적하도록 권유한 통합당 황교안 대표를 정당법 위반 등으로 2월 초 검찰에 고발한 것도 잊은 듯 앞선 투표용지 기호를 받는다는 명분으로 의원 8명을 더불어시민당에 꿔주었다.

거대 양당이 이 모양이니 당선만 될 수 있다면 유사 정당을 창당하거나 정당을 옮겨가며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후보자들을 마냥 비난하기도 힘들다. 통합당 공천에서 배제된 재선의 이은재 의원은 기독자유통일당을 거쳐 한국경제당으로 옮겨 대표를 맡았고 8선의 서청원 의원은 우리공화당 비례대표 2번을 받아 9선을 노리고 있다.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강서갑에 출마하려다 좌절된 정봉주 전 의원이 주도해 만든 열린민주당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으로 기소된 최강욱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등 민주당 공천 검증 문턱을 넘기 어려운 인사들을 당선권에 배치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며 계속되는 꼼수 정치는 정치 혐오증을 키우고 있다. 법의 취지는 외면한 채 소극적 해석과 기계적 중립만 고수하는 선관위 탓도 크다. 불출마하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후보자 신분이 아니라서 더불어시민당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선거에 출마한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미래한국당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선관위 해석도 ‘후보자’에 해당하느냐 아니냐를 따진 기계적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 선대위를 구성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공동 회의나 행사를 여는 것은 사안별로 검토가 필요하다는 선관위 해석도 이런 꼼수 퍼레이드에 결과적으로 숨통을 터준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미래한국당 원유철 대표가 점퍼를 뒤집어 입고, 민주당은 ‘쌍둥이 버스’에서 4·15총선일에 착안한 민주당 1번과 더불어시민당 5번을 강조한 것도 이런 틈을 노린 것 아닌가.

정당법 2조는 정당에 대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모(母)정당의 의도대로 만들어져 후보자를 대리 추천하고 ‘짜깁기’로 베낀 공약을 내놓은 위성정당들이 과연 이 개념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여야의 캐치프레이즈인 ‘코로나 극복’과 ‘정권 심판론’도 좋지만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정치 꼼수를 심판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