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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휴가 불이익-직장내 성희롱… 무료로 상담-치료 받으세요

입력 | 2020-04-07 03:00:00

전국 21곳서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서울 영등포구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에 마련된 고용평등상담실(왼쪽). 고용노동부는 민간에 위탁한 전국 21개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직장 내 성차별 피해 근로자들을 위한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고용노동부 제공·게티이미지코리아

《사업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직장인 여성 A 씨.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사업주를 경찰에 신고했다. 문제는 A 씨가 성희롱 피해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 사업주는 A 씨와 연인 관계였다며 그를 무고죄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성희롱을 당하고도 해고 등 불이익이 두려워 저항하지 못한 A 씨는 자책까지 했다.

하지만 A 씨는 고용노동부 고용평등상담실의 상담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을 ‘꽃뱀’으로 몰아붙인 사업주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었다. A 씨는 정식 신고 절차를 밟기 전부터 고용평등상담실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다. 그때 기록에 남은 상담내용이 A 씨 주장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활용된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진행하는 상담과 심리정서 치유프로그램은 향후 피해 구제 단계에서 활용할 객관적인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난해 근로자 약 1만 명 찾아

고용평등상담실은 고용부가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차별 등 피해를 입은 근로자를 지원하기 위해 운영하는 상담실이다. 오랫동안 성희롱·성차별 상담을 진행해온 여성단체 등 상담 역량을 갖춘 민간단체를 선정해 운영을 맡겼다. 현재 전국 21개 상담소가 운영 중이다.

A 씨처럼 사업주나 상사, 동료로부터 성희롱이나 성차별을 당한 근로자라면 고용평등상담실을 찾아가 상담을 받거나 문제 해결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다. 피해 근로자가 원하면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정식 신고사건으로 접수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희롱 피해 근로자뿐만 아니라 출산과 육아에 따른 불이익 등 성차별 근로자도 상담실을 찾을 수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1개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총 1만839건(중복 상담 포함)의 상담이 진행됐다. 상담 건수는 2015년(6783건)부터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상담 내용으로는 임금체불이 4948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직장 내 성희롱(3524건), 출산휴가 등 모성보호(1986건) 관련이 뒤를 이었다.

고용평등상담실은 단순히 문제 해결절차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서기도 한다. 직장인 여성 B 씨는 출산 후 회사로부터 쪼개기 계약을 강요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리기 전만 해도 B 씨는 1년씩 전일제로 계약했다. 출산 이후 복직하자 회사는 2개월 계약에 시간제 근무로 변경하자고 압박하다 결국 B 씨를 해고했다.

B 씨는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상담을 받은 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기로 결심했다. 상담원은 부당해고를 입증하기 위해 B 씨가 다닌 회사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고, 지역단체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그 결과 B 씨는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내 복직에 성공했다. 그는 현재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 프로그램 통해 심리정서까지 치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사건이 접수되면 피해 근로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진술하는 등 조사를 받아야 한다. 피해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 이를 진술해야 하기에 많은 피해자들이 심리적 부담을 호소한다. 고용평등상담실에선 성희롱·성차별 피해 및 피해구제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심리정서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심리정서 치유프로그램은 불안이나 우울증을 심각하게 겪는 피해자에게 심리상담 전문가가 최대 10회까지 대면상담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A 씨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았다. 비용은 전액 무료. 고용부는 상담실 운영비(7억6100만 원)와 별도로 심리정서 치유프로그램을 위해 1억500만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박영 고용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성희롱 피해자의 경우 신고를 접수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며 “상담실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한결 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희롱·성차별 피해 후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면 향후 분쟁에서 불리할 수 있으니 그전에 꼭 상담실을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