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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과 티타임[권용득의 사는게 코미디]〈18〉

입력 | 2020-04-07 03:00:00


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외숙모가 돌아가셨다. 당뇨 합병증이 심해지면서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외숙모를 곁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외숙모 가족의 마음고생도 헤아리기 힘들다. 그게 벌써 한 달 전 일이고,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될 무렵이었다. 그 무렵부터 외숙모 같은 중환자는 격리돼서 가족조차 면회가 제한됐다. 외숙모 가족은 결국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빈소는 ‘안심병원’으로 지정된 한 병원 내 장례식장이었다. 병원 출입은 삼엄하게 통제되고 있었지만, 병원 옆에 딸린 장례식장 출입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문상객까지 일일이 통제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코로나도 상갓집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걸까. 장례식장은 얼핏 다른 차원의 세계 같았다.

평일 낮 시간이긴 했지만 문상객은 나밖에 없었다. 외숙모 가족에게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조카들 용돈이나 챙겨 주고 얼른 돌아가려고 했는데 조카들이 보이지 않았다. 외종사촌 큰누나는 조카들을 각자 시댁에 맡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뜸 큰 조카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큰 조카, 그러니까 큰누나의 딸이자 외숙모의 첫 번째 손녀가 한 수영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1등을 차지했다면서 스마트폰 영상까지 보여줬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 과연 자랑할 만했다. 우리는 서로 머리와 어깨를 맞댄 채 큰 조카가 수영하는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감상했다. 그 순간만큼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킬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스크를 단단히 여민 사람들 틈에서 전쟁 중에도 티타임을 가졌다는 영국군을 떠올렸다. 한산했던 장례식장에 비해 장례식장 바깥은 전쟁터나 다름없었고, 외숙모 장례식이 꼭 그 티타임 같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제는 그 티타임마저 위태롭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세계는 외숙모의 당뇨 합병증처럼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유럽의 몇몇 나라와 미국은 가족이 세상을 떠나도 장례식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영국군의 티타임처럼 전쟁 중에도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던 일상 그 자체가 코로나의 감염원인 셈이니까 일상의 교환을 차단하고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

그건 다시 말해 큰 조카가 언제 다시 수영장을 시원하게 가로지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큰 조카와 동갑인 우리 집 아이가 언제 다시 학교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졸지에 생업이 중단된 사람들은 언제 다시 생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미증유의 사태는 더 이상 누릴 일상이 없는 망자에게만 예외일 뿐이다. 어쩌면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봄이 매번 무심코 찾아오듯, 몹쓸 바이러스도 무심코 떠나기를.
 
권용득 만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