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용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공동단장
왜 아직도 아들을 잃은 엄마가 대통령에게 누구 소행이냐고 묻는 기막힌 일이 생기는 걸까. 윤덕용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장은 1일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아직도 이념에 치우쳐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응용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KAIST 재료공학과 교수, KAIST 원장 등을 역임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10년이 지났는데 참여연대 등은 여전히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도 붙잡고 물어보니까 마지못해 답하고…. 윤 할머니 기사를 보고 문 대통령도 당당하게 말할 자신은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폭침 당시에도 도올 김용옥 교수처럼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보고서도 제대로 보지 않고 0.0001%도 안 믿는다고 했다. 어뢰도 찾고, 4개국 외국 조사단까지 인정한 결과를 안 믿으면 어쩌자는 건지. 6·25를 남한이 일으켰고, 달 착륙도 조작됐다는 사람들이 아직 있긴 하지만….”
※천안함 폭침은 2010년 3월 26일 발생했다.
2010년 5월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윤덕용 전 단장(당시 KAIST 명예교수).
※당시 KAIST 송태호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폭발 순간 어뢰 앞부분에서 3000도의 고열이 발생해도 0.1초 후에는 28도로 떨어졌다. 어뢰 뒷부분은 폭발 순간이나 0.1초 후나 3도였다.
―어뢰의 부식 조사를 육안으로만 한 것도 논란이 됐다.
“수거된 어뢰가 증거가 되려면 천안함이 공격당한 위치·시간과 일치해야 했다. 천안함 인양 지점 인근에서 어뢰가 수거됐기 때문에 위치는 맞다고 봤다. 하지만 몇 년 전에 가라앉은 어뢰가 우연의 일치로 인양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배와 어뢰의 부식 상태가 비슷하다면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육안으로만 했나. 정밀분석을 안 하고.) “내가 재료공학을 해서 그 부분은 잘 아는데… 바닷속에서의 부식은 재질, 상태, 해수의 염기도, 용존산소량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분석을 해도 정확하게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이 어뢰가 몇 년 전에 가라앉은 거냐 아니냐는 차이 정도만 봤다. 그 정도는 육안으로도 비교할 수 있다.”
※천안함 함미는 어뢰 발견 지점에서 북쪽으로 150m, 함수는 남쪽으로 45m 떨어진 곳에 가라앉았다.
“당시에 발견된 컴퓨터 얘기를 자세히 안 하고 증거물 목록에만 올려놓은 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컴퓨터 설명을 자세하게 했다면 수거된 어뢰가 결정적 증거라는 걸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는데….” (컴퓨터라니?) “배같이 큰 물체는 공격받아 침몰하면서도 어느 정도 떠내려가기 때문에 배 인양 장소가 바로 공격받은 지점이 아닐 수 있다. 반면 작지만 무거운 물체는 배에서 떨어지면 바로 가라앉는데, 천안함에 설치된 컴퓨터가 쌍끌이 어선에 발견됐다. 배가 동강나자마자 가라앉은 거다. 어뢰는 그 컴퓨터가 인양된 곳에서 같은 날 나왔다.” (그 컴퓨터가 천안함 것이라는 건 어떻게 아나.) “이름이 적혀 있으니까. 관리책임관 상사 오동환이라고. 생존자다.”
―쌍끌이 어선으로 어뢰를 찾을 생각은 어떻게 한 건가.
“세계 역사상 공격한 어뢰를 다시 찾아서 조사한 경우가 거의 없다. 어뢰란 게 전쟁 때 사용된 건데 그 난리 통에 누가 다시 찾을 생각을 하겠나. 미국 조사단도 인양된 천안함 상태를 보자마자 어뢰의 버블제트로 인한 파손이라 했지만 물증을 찾기 전까지는 결론을 내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엄청나게 깐깐했다. 그러던 중 합조단에 파견 온 한 공군 대령이 과거 동해에 전투기(F-15K)가 추락했을 때 쌍끌이 어선을 동원해 300m 깊이에서 잔해를 수거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서 그 전투기를 수거했던 대평호 김남식 선장을 수소문해 어뢰를 찾은 거다. 사실 시작할 때만 해도 미국 조사단도 그렇고 우리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잔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상태로 있을지, 산산조각 나 아무것도 없을지 아무도 몰랐으니까. 완전히 천운이었다.”
―만약 어뢰가 발견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당시 미, 영, 호주, 스웨덴 등 4개국 외국 조사단이 참여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나.
“각자가 속한 분과에 들어가 모든 회의에 다 참석했다. 조사과정에 대한 검증은 물론이고 직접 아이디어도 냈는데 자신들도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미국 조사단은 가져온 장비로 ‘디싱(dishing)’을 확인해줬는데… 어뢰에 의한 버블제트 공격을 받았을 때 선체에 나타나는 특징을 말한다. 버블제트 압력으로 선체 철판이 뼈대 사이사이로 움푹움푹 밀려들어간 현상인데 마치 접시 바닥처럼 들어갔다고 해 이렇게 부른다고 하더라. 충격 지점에서 멀어질수록 파인 깊이가 엷어지고… 직격탄을 맞으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조사의 신뢰성을 제기한다.) “합조단에 파견된 사람들은 대부분 해군이 아닌 육군이었다. 군 측 공동단장도 육군 박정이 중장이었고.” (육군이 어뢰에 대해 뭘 아나.) “조사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국방부가 그렇게 한 것 같다. 팔이 안으로 굽으면 안 되니까. 여기에 외국 조사단, 나 같은 민간인도 30여 명이나 있었는데… 일각에서 조작 의혹도 제기하지만 130여 명이나 되는 조사단을 모두 어떻게 속이겠나.”
―괴담 수준의 주장도 난무했는데….
“조사가 끝나고 어뢰를 전시했는데 그때 사람들이 찍은 사진 중에 어뢰에 붉은 뭔가가 묻어 있는 게 있었다. 우리가 조사할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게 동해에만 서식하는 붉은 멍게 잔해라는 주장이 나왔다. 서해에서 수거된 어뢰가 아니라는 거지. 하도 논란이 이니까 나중에 국방부가 분석을 했는데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생명체는 아닌 걸로 판명됐다. 내 생각에는 그 어뢰의 북한 측 실물 사진을 보면 탄두 부분을 빨간 페인트로 칠했는데 그게 순간적으로 폭발하면서 묻은 게 아닌가 싶다. 잠수함 충돌설은 이스라엘 잠수함이 서해에 와서 훈련하다 충돌했다는 건데… 둘 다 당시 민주당이 민간위원으로 추천한 신상철이란 사람이 제기했는데 그는 합조단 발족 후 한참 후에 와서 회의 한 번 참석하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신상철 씨가 제공한 사진을 근거로 붉은 멍게설을 보도한 오마이뉴스는 2011년 4월 6일자로 사과보도를 냈다.
―아직도 조사 결과를 안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쉬움은 없나.
“천안함 폭침이 발생한 그해에는 지속적으로 추가 설명회를 가졌다. 하지만 이듬해부터는 팀도 다 해산돼 보완이나 수정 설명을 못 했다. 당시 정부 입장에서는 결론이 명백하게 끝난 사안이라고 봤기 때문에 추가 설명을 할 필요도 못 느낀 것 같다. 다시 보충 설명한다고 하면 뭔가 조사가 잘못된 것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고…. 당시 보고서에 활용되지 못한 의미 있는 자료들이 많기 때문에 나중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을 때가 되면 누군가 조사 과정을 학문적으로 깊게 연구했으면 좋겠다. 외국 같으면 벌써 관련된 박사학위는 물론이고 논문이 몇 개는 나왔을 텐데…. 그때쯤 되면 지금 같은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