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수반의 건강은 정책 결정과 외교 협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안보 사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는 대통령이나 총리의 사망 또는 탄핵에 따른 유고 상황에 대비한 권력승계 서열을 정해 둔다. 미국의 권력승계 서열은 부통령 겸 상원의장, 하원의장, 상원 임시의장, 국무장관 등의 순서다. 미국 건국 이래 대통령 8명이 임기 중 사망하고,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하야해 9번의 유고가 발생했는데 모두 부통령이 이어받았다.
▷한국에선 1960년 이승만 전 대통령 사임을 시작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 5차례의 권한대행 체제가 있었다. 권력승계 서열은 국무총리, 기획재정부 장관, 교육부 장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외교부 장관 등의 순이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상태가 악화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어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존슨 총리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선임장관인 도미닉 라브 외교장관에게 총리 권한대행을 맡겼다. 성문 헌법이 없는 영국에는 왕위계승법에 따른 왕실 승계서열은 있지만 내각의 승계서열은 명문화된 게 없다. 존슨 총리가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라브 장관이 총리 권한을 행사한다. 하지만 보건부 장관 등 다른 각료와 차관 가운에서도 확진 판정자가 나오고 있다. 라브 장관을 비롯해 다른 각료들로까지 감염이 번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지정생존자’를 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까지 나온다. 유례없는 감염력을 지닌 별종 바이러스에 영국 권력의 최상층부까지 흔들리고 있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