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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작품 많지만… 아직도 ‘생존’이 고민이죠”

입력 | 2020-04-08 03:00:00

[엔터 View]영화제작사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




‘짝패’ ‘주먹이 운다’ ‘부당거래’ 등 외유내강이 제작한 영화의 DVD 진열대 앞에 선 강혜정 대표.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게 우선인지, 원한다고 생각되는 것을 만드는 게 우선인지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영화제작사 외유내강이 제작 중인 영화 ‘모가디슈’는 생존을 다룬 작품이다. 1990년 내전에 휩싸인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고립된 한국과 북한의 대사관 사람들이 함께 탈출한 실화가 바탕이다. 이념과 체제를 뒤로하고 남북 외교관들이 힘을 합친 이 사건을 외유내강과 덱스터스튜디오가 공동으로 영화화했다. 영화 후반작업에 한창인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50)를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지(死地)에 놓인 두 나라 대사의 생존을 건 탈출이라는 상황 자체가 극적이에요. 너무 드라마틱하지 않게, 있는 그대로를 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강 대표가 2005년 남편 류승완 감독과 세운 외유내강은 ‘짝패’(2006년)를 시작으로 2011년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부당거래’(2010년), 1341만 관객을 모은 ‘베테랑’(2015년), 942만 명이 본 ‘엑시트’(2019년) 같은 흥행작을 꾸준히 선보였다.

관객 1341만 명을 모은 영화 ‘베테랑’. 재벌 3세 조태오(오른쪽) 역을 맡은 배우 유아인의 대사 “어이가 없네”는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화제가 됐다.

강 대표는 어렸을 적의 자신을 천방지축으로 표현했다.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렸다. 고려대 가정교육과에 진학한 뒤 학생운동에 빠졌다. 졸업하고 임시교사로 일해 6개월 치 월급을 받았다. 이 돈을 어디에 쓸지 고민하던 강 대표가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앞을 지날 때 독립영화협의회 전단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영화를 만들진 못한다.’

“장난스럽게 협회에 전화를 걸었는데 그게 영화 일의 시작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팔자라는 게 있구나’ 싶어요.”

독립영화협의회에서 시나리오 집필부터 촬영, 편집까지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경험한 뒤 영화제작사, 투자배급사 등에서 마케팅을 맡았다. 영화홍보사 ‘영화방’을 시작으로 제작사인 ‘씨네2000’ ‘시네마서비스’ ‘좋은영화’를 거쳤다. 독립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부터 ‘투캅스3’ ‘신라의 달밤’ 같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홍보했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 독립하고 싶어 외유내강을 차렸다.

영화사를 차렸을 때나 지금이나 강 대표의 고민은 생존이다. 수년간 공들인 결과가 주말 이틀간 예매율 하나로 판가름난다. 강 대표는 “이보다 더 큰 도박판이 없다”며 “시장에서 살아남아 수익을 낼 방법을 작품마다 치열하게 고민한다”고 했다. 생존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강 대표는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중의 취향과 관심은 너무 빨리 바뀌어서 종잡을 수가 없어요. 대중을 들여다보는 대신 제 자신을 봐요. 내 취향이 어떻게 바뀌었지? 난 무엇을 할 때 즐겁지?”

끊임없이 자문(自問)한 끝에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을 원한다’는 답을 얻었다.

“무겁거나 잔인한 영화라도 결국 관객에게 어떤 재미를 줄 수 있느냐가 핵심이지요.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려다 제작진끼리만 심취해 재미를 잃어버려서는 안 돼요.”

2017년 선보인 류 감독의 영화 ‘군함도’는 외유내강에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관객 659만 명을 모았지만 역사 왜곡과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었다. 비판의 한가운데 놓였던 그 시간은 강 대표와 류 감독에게 상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성장의 계기가 됐다.

“그때까지 외유내강은 사실 ‘류승완 프로덕션’이었어요. 하지만 군함도 논란 후에 류 감독이 칩거의 시간을 가지면서 외유내강은 자연스럽게 다른 감독들과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지난해 개봉한 ‘사바하’ ‘엑시트’ ‘시동’ 등이 외유내강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입증한다. 외유내강이 신인감독과 작업한 첫 영화인 ‘엑시트’는 이상근 감독에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안겼다.

지난해 제작한 ‘엑시트’는 유독가스에 포위된 도심 속에서 용남(조정석·오른쪽)과 의주(임윤아)가 탈출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위기를 기회로 바꾼 강 대표는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용기를 가로막지 않도록”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 최근 화두는 플랫폼이다. 지금까지 영화만 만들었지만 다양해지는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려고 한다.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100% 촬영한 ‘모가디슈’의 경험을 토대로 해외 제작사나 투자사와 협업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도 추진할 계획이다. “회사 이름처럼 유연함과 강인함을 두루 갖춘 외유내강형 제작자가 되고 싶어요. 류 감독의 성(姓)과 제 성을 따 ‘바깥사람은 유씨, 안사람은 강씨’라며 장난스럽게 지은 이름이지만요.” 강 대표가 활짝 웃었다.
 
::강혜정 대표는…::
 
△1970년생
△고려대 가정교육학 전공
△영화 홍보사 ‘영화방’에서 외화 마케팅
△영화 제작사 ‘씨네2000’ ‘시네마서비스’ ‘좋은영화’ 근무
△2005년 영화 제작사 ‘외유내강’ 설립
△‘짝패’ ‘부당거래’ ‘베테랑’ ‘베를린’ ‘군함도’ ‘엑시트’ 등 제작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