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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빠진 선거, 그래도 외면할 순 없다[동아 시론/이현우]

입력 | 2020-04-09 03:00:00

지역주의-진영논리-비방전 또 반복
이번엔 한술 더 떠 선거법 악용까지
참담하지만… 투표권 포기 말아야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모든 선거는 역대 선거와의 유사성과 함께 특정 선거만의 고유성을 갖는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다. 지역주의의 영향은 여전히 강력하고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립각은 더욱 첨예화되고 있다. 거대 정당들은 총선을 앞두고 현역 물갈이를 통한 세대교체를 약속했지만 공천 결과를 보면 여전히 기성 정치인들이 지배하고 있다. 상향식 공천 비율도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고, 인재 영입은 가십성 이벤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 선거와 판박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닥치고 선거 승리’가 유일무이한 목표다.

총선 유세도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 선거운동은 지난 4년 동안 정당들의 활동 업적을 홍보하고 향후 비전을 제시하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거대 양당은 상대 정당을 몹쓸 정치라고 비난하면서 표를 호소하고 있다. 상대 정당 비난에 주력한 나머지 정작 자기 정당 홍보에는 소홀하다. 그러다 보니 이전 선거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소환된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다수당이 되어야 한다는 여당이나 대통령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는 야당이나 본인들은 정치권의 조연에 지나지 않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대통령제에서 의회는 입법권뿐만 아니라 행정부 감시 권한이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평상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외쳐왔지만 총선에선 여전히 대통령이 중심에 서 있다. 21대 국회에서도 행정부를 무조건 감싸는 여당과 반대에 골몰하는 야당의 전통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구도가 지난 선거들과 다른 것도 있다. 불행히도 더 나쁜 것뿐이다. 입법 취지를 무시한 선거법 악용이 첫 번째다. 준연동형을 포함한 개정선거법으로 치러지는 작금의 선거판은 점입가경이다. 비례대표제 후보토론회에 거대 양당이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가히 기형적 선거의 백미라 하겠다. 47석이나 걸린 토론회지만 정작 더불어민주당이나 미래통합당 후보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의석을 더 늘리겠다는 선거공학적 계산에 따라 거대 양당이 모두 비례후보를 공천하지 않음으로써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희극적 사태다.

이번 총선의 또 다른 특성은 진영논리의 절대적 지배다. 이전에는 진보와 보수의 결을 가르는 차이는 대북정책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무조건 편들어야 하는 내 편과 어떤 경우에도 밉상인 상대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한국사회라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해 왔던 도덕적 가치 기반은 붕괴되고 자기합리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세력과의 타협과 합의는 잊혀진 지 오래다. 심지어 여야 모두 내부의 건전한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면서 집단 내 다양성은 사라지고 무조건적 단결과 충성이 미덕처럼 됐다.

지난주 갤럽조사를 보면 대통령 직무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의 58%가 그 이유로 코로나19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꼽았다. 반면 부정평가를 한 응답자 중 33%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처 미흡이 부정평가의 원인이라 답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70%까지 지급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는 민주당 지지자 84%가 동의했지만 통합당 지지자 중에는 33%만이 동의했다. 문제는 중대 현안에 대한 인식 격차가 신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진영 갈등의 결과라는 점이다. 양 진영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중도층 가운데 정치 혐오와 냉소적 태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선거일 일주일 이내에 투표 결정을 한다는 유권자가 47.4%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다(동아일보 4월 7일자). 절반에 육박하는 유권자들이 투표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찍어주고 싶은 정당이나 후보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덜 거슬리는 후보와 정당을 택하는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다 보니 투표 결정이 늦어지게 된다. 선거운동 막바지까지 선택을 주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업적이라고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정당이 많다 보니 2주짜리 선거운동이라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고통스럽고, 망설이는 유권자가 많을수록 투표율은 낮아지게 마련이다.

이번 선거를 외면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기권해도 코로나19라는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있지 않나. 그런데 다음 사실이 투표장으로 향하게 만든다. 20대 총선에서 1000표 이하로 당선자가 갈린 선거가 무려 12곳에 이르며, 3% 이하 득표 차로 당선자가 결정된 선거구가 거의 40곳에 이른다. 선거 전문가들 사이에는 ‘눈 쌓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것은 마지막 하나의 눈송이’라는 격언이 있다. 어쩌면 내 한 표가 마지막 눈송이가 될 수도 있다. 이번 금요일과 토요일이 사전투표 날이다. 기권은 침묵과 다르지 않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