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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출” 11개월 뒤 받은 ‘시상식 초대장’

입력 | 2020-04-09 03:00:00

‘배구인생 역전’ 우리카드 최석기
“나를 다른 팀 보냈던 감독님과 새 팀에서 만나는 신기한 인연
동료들 받쳐줘 주전센터 발돋움”




프로배구 12년 차 센터 최석기(34·우리카드·사진)는 지난해 5월 한국전력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첫아들 최로하 군의 돌잔치를 치른 지 딱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내 배구 인생은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배구를 그만둬도 후회 안 할 자신 있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최석기는 옛 스승인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교롭게도 신 감독은 한국전력 사령탑이던 2015년 12월 최석기를 한국전력에서 대한항공으로 보낸 당사자. 그런 신 감독이 최석기가 내민 손을 잡았다. 최석기는 7일 “트레이드될 때만 해도 ‘인연은 돌고 돈다’는 감독님의 말을 이해 못 했다. 방출 상황에서 감독님을 다시 만나게 되니 인생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벼랑 끝에서 기회를 얻은 최석기는 거듭났다. 2019∼2020시즌 구단 사상 첫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우리카드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백업 전력으로 평가받았지만 주전 센터로 자리 잡으며 리그 전체 속공 2위(성공률 63.20%), 블로킹 8위(세트당 0.467개)를 했다. 최석기는 “언제 투입되든 팀 분위기만 좋게 바꾸자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세터 노재욱과의 재회도 도움이 됐다. 노재욱은 지난 시즌 초반 최석기와 한국전력에서 뛰다 우리카드로 트레이드됐다. 최석기는 “한창 손발을 맞추다가 재욱이가 떠나 아쉬웠는데 다시 만났다. 아무래도 좀 더 편하게 서로를 믿고 플레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최석기가 신경 쓰는 공격 범실을 지난 시즌 14개에서 올 시즌 4개로 줄이는 등 효과를 봤다.

올 시즌 우리카드가 1위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최석기는 “모두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잘해줬다. 누가 부상을 당하거나 대표팀에 갔을 때도 남은 선수들이 자리를 잘 채워줬다”고 답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즌이 조기 종료된 건 아쉽기만 하다. 최석기는 “지든 이기든 챔피언결정전을 경험해 봤다면 어린 선수들에게 큰 발전의 기회가 됐을 것이다. 시즌 막판 2위 대한항공의 추격이 거셌지만 ‘쉽게 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지옥과 천당을 오간 최석기는 최근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아들을 보며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9일에는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다. V리그 시상식이 약식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1위 팀 선수 자격으로 초청장을 받았기 때문. 최석기는 “갑작스레 시즌이 끝나 나누지 못했던 인사도 하고, 있는 힘껏 박수도 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운 오리’ 최석기의 행복한 시즌 마무리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