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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롤모델[이즈미의 한국 블로그]

입력 | 2020-04-10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대학에서 비대면 강의를 실시한 지 한 달이 됐다. 나는 신입생들 얼굴도 못 본 채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느라 매일 집에서 지내고 있다. 내가 만든 강의에서 부족한 점이 눈에 띌 때마다 고문당하는 기분이다. 고백하건대 몸무게도 3kg이나 불어 안팎으로 답답하다.

그런 와중에 오랜 지인인 박상국 동국대 석좌교수가 책을 한 권 보내주셨다. 박 교수를 안 지 30년 되었는데 내게 그는 ‘경상도 친척 오빠’ 같은 분이다. 만나면 늘 맛깔스러운 한국음식을 사주는 구수하고 정다운 분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연구자로서 올바른 자세와 태도를 지닌 무척 세련된 분이다.

반면 나는 어느새 올바른 자세와 태도에서 멀어졌고 늘 주어진 일만 처리하기에 급급하다. 박 교수 같은 배울 점이 많은 롤모델을 옆에 두고도 몰랐으니 등장 밑이 어두웠던 셈이다.

박 교수는 불교서지학자이며 고려대장경 연구의 권위자다. 그동안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장 등을 지내면서 한국 문화재의 가치와 의미를 연구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에 오랜 시간 천착해 왔다. 1990년대 이후에는 전적조사연구회를 꾸려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을 50여 차례 오가며 해외에 유출된 한국 고서를 조사했다. 특히 문화재 반환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일을 해냈다. 그는 ‘국외에 있는 문화재는 제자리를 찾아야 제 가치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온 국민이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개인의 차원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외교적인 방법을 통해 양국 간 신뢰를 구축하며 문화재 반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의 이런 신중한 성품은 2011년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실 의궤’와 이토 히로부미가 반출해간 책 등 조선왕실 도서 1205권을 돌려받기 위한 실무협상에서 성과를 내며 빛을 발했다. 당시 그는 한국 측 대표 역할을 담당했다.

내가 박 교수를 알게 된 것은 일본에 계시는 은사 이시가미 젠노(石上善應) 교수 덕이다. 박 교수와 함께 같은 스승을 모신 인연 때문이다. 이시가미 교수는 다이쇼(大正)대 명예교수로 슈쿠토쿠(淑德) 단기대학 총장과 동국대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91세의 연세에도 대학 강단에 서신다.

이시가미 교수는 학자로서도 훌륭하지만 곁에서 모시면서 엿본 인품이 남달랐다. 동국대 석좌교수로 있을 때는 한국에서 받은 월급을 일본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며 환원할 수 있는 길을 궁리했다. 그러던 중 ‘젊은 학자들에게 학문적 자극을 주고 양국 불교 교류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한국에서 받은 월급을 모두 모아 ‘한일불교문화학술상’을 제정했다. 이 상의 수상자는 젊은 불교학 연구자 가운데 탁월한 성과를 낸 학자 중에서 정한다. 한국의 불교를 일본에 알려 양국의 교류에 이바지한다는 의미에서 심사 대상은 일본어로 발표한 불교학 논문이나 저술로 한정했다.

또 평생 모아온 불교서적 5000여 권을 동국대 도서관에 기증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기증용 책을 20kg씩 직접 들고 오기도 했다. 이 책 중에는 이시가미 교수가 40여 년간 불교학을 연구하며 수집한 산스크리트어본, 티베트어본 장경 등이 포함돼 있다. 1999년에는 티베트 장경 중 하나인 ‘범문진경패엽(梵文珍經貝葉)’ 사본을 기증하기도 했다. 검소하게 살면서 사람들에게 늘 베푸는 삶을 살았고 일본에서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자주 챙길 만큼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스님인 할아버지 밑에서 제자 중 한 명으로 절에서 자랐다. 선행이 몸에 배어 있는 분이다. 내가 한국에 와서 쌀도 못 사고 온돌에 불을 못 땔 만큼 어려운 시절에 용돈도 자주 챙겨 주셨다.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분은 내게 학자로서의 자세는 물론이고 살아가는 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나를 늘 ‘한국의 딸’이라 소개하시는데 진짜로 믿는 분이 있어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시가미 교수처럼 베풀며 살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분 덕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박 교수도 그중 한 분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학자로서 ‘아버지’와 ‘오빠’가 있어 든든하게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