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경로 밝히려 붙인 인식표… 北아버지가 발견해 간접 상봉 北-日 합작 영화 ‘새’ 실제 주인공 직접 발견한 조류만 50종 넘어… 윤무부-유정칠 교수 등 후학 길러
‘한국 조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원병오 경희대 명예교수(오른쪽)는 생전 조류 연구 현장에서 언제나 헌신적이었다고 한다. 동아일보DB
1960년대 북으로 날려 보낸 철새 덕에 부친을 찾았던 이야기로 유명한 ‘한국 조류학의 아버지’ 원병오 경희대 명예교수가 9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요즘 세대에게 ‘새 박사’로 익숙한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의 스승이다. ‘원조 새 박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로 희귀·멸종 조류에 대한 연구에 헌신했던 원 교수는 직접 발견한 조류종만 50종이 넘는다. 특히 6·25전쟁 전후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던 천연기념물 제197호 ‘크낙새’의 번식 과정을 밝혀내기도 했다. 척박했던 국내 조류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4남 2녀 가운데 막내였던 고인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산과 들로 새를 쫓아다녔다. 소중했던 유년 시절은 아버지를 따라 조류학에 투신하게 했다. 북한 원산농업대 축산학과를 졸업했으나 곧 6·25전쟁이 터졌고, 이후 남한으로 내려오며 아버지와 헤어졌다.
생사도 확인할 길 없던 부자(父子)는 15년 뒤 숙명과도 같던 ‘새’를 통해 다시 이어졌다. 1963년 원 교수는 철새의 이동 경로를 조사하려 북방쇠찌르레기 99마리 다리에 추적용 알루미늄 링(인식표)을 달아 날려 보냈다. 그런데 북한에 있던 아버지가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인식표에 일본어가 쓰여 있는 걸 본 아버지는 일본 도쿄의 국제조류보호연맹 아시아지역본부에 알루미늄 링 내력을 묻는 편지를 보냈다.
이후 원 교수는 일본 측에서 “원홍구 교수가 북방쇠찌르레기 다리에서 알루미늄 링을 발견했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연락이 끊겨 살아 계신 줄도 몰랐던 아버지 소식을 전해 들은 순간이었다. 이후 부자는 세계 조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서신과 사진 등을 몰래 주고받기도 했다. 이 기적 같은 스토리는 1992년 일본과 북한 합작영화 ‘새’로 만들어졌다. 아쉽게도 1970년 아버지 원홍구 교수가 별세하며 두 사람은 끝내 만나진 못했다.
하지만 고인은 조류학자로서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2001년 동북아시아지역 환경 개선에 힘써 온 공로로 국제환경상도 수상했다. 고인의 아들인 원창덕 씨(60)도 미국 매사추세츠대에서 학위를 딴 뒤 현재 미래환경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원 소장은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전국을 누비면서 환경에 관심을 가졌다”며 “국제환경상을 받은 아버지 뜻을 이어 환경 보존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7시.
김태언 beborn@donga.com·김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