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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물 유포 검거율 84%, 성 착취물 87%… 결국은 꼬리 밟힌다

입력 | 2020-04-11 03:00:00

외국 SNS는 추적 어려워 안 걸린다?
해외 기관과 적극적으로 공조
작년 ‘지인 능욕’ 계정 운영 20대
IP주소 확보, 2주도 안돼 체포




“솔직히 못 잡을 줄 알고, 재미로 한 건데….”

지난해 9월 아동·청소년 음란물 유포 등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윤모 씨(22). 그는 경찰 조사에서 절망한 듯 푹 고개를 숙였다.

낙심한 그때와 달리, 윤 씨는 범행을 저지를 때만 해도 무척이나 대범했다. 그는 2017년부터 무려 2년 동안 소셜미디어 등에서 이른바 ‘지인 능욕’ 계정을 운영했다. 지인 능욕이란 평범한 주변인을 음란물에 교묘하게 합성해, 마치 지인이 그런 행위를 한 것처럼 만들어 능욕을 준다는 뜻이다.

소셜미디어에 ‘홍보용’으로 합성 사진 4장을 공개적으로 올리기도 했던 윤 씨는, 남성 수십 명으로부터 비슷한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그가 제작 유포한 지인 능욕 사진은 수백 장에 이른다.

윤 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해외에 본사를 둔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국내 경찰에겐 검거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해외 소셜미디어에는 한국 검찰과 경찰의 수사망이 미치지 못한다는 소문을 맹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윤 씨는 한국 경찰과 해외 기관의 공조로 검거됐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은 지난해 8월 20일 해당 소셜미디어 본사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윤 씨의 인터넷주소(IP주소)를 넘겨받았다. 실제로 검거까지 2주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에 본사를 둔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면 추적이 어려울 거란 소문이 사실과 다르다. 이미 검경은 다양한 해외기관과 협조해 피의자들을 검거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수사기관은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할 때 해외에서 주로 쓰는 위장수사 기법은 피하고 있다. 현행법상 자칫 위법 소지가 있는 ‘함정 수사’로 판단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해외 공조 등 다른 방식을 적극 이용해 범인을 추적한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8년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사건의 검거율은 무려 83.5%에 이른다. 2463건 가운데 2056건은 피의자의 구체적 신분을 찾아내 붙잡았다. 아동·청소년 관련 성 착취물을 제작, 배포한 사건 역시 988건 가운데 858건(86.8%)의 피의자를 검거했다.

물론 잠복 수사는 여전히 중요한 기법이다. 범행 현장을 덮쳐야 중요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 지난해 경기 수원서부경찰서가 미성년자에게 성관계를 제안한 남성 이모 씨(24)를 붙잡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5시경 서부경찰서 매산지구대에는 중학생 A 군(15)이 도움을 요청해왔다. 온라인에서 자신이 여성인 척 A 군을 유혹한 이 씨는 A 군의 개인정보와 신체 일부의 사진을 메신저로 받아냈다. 이후 돌변한 이 씨는 A 군에게 “직접 만나서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사진을 공개하겠다”며 협박했다고 한다. A 군은 경찰에 “1시간 뒤 만나기로 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두 사람이 만나기로 한 모텔 앞에서 때를 기다렸다. 사복을 입은 남녀 경찰관 2명은 연인으로 가장해서 주변에 대기하기도 했다. 상당히 신중했던 이 씨는 다섯 차례에 걸쳐 약속 장소를 바꿨다. 하지만 결국 오후 6시 20분경 경찰에 붙잡혔다.

이처럼 관련 범죄자를 붙잡으려면 피해자의 용기 있는 신고가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권현정 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 수사기관은 반드시 가해자를 검거할 수 있다. 가해자가 붙잡혀 처벌받아야 피해자들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 적극적인 신고가 뭣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은 “우선 현행법과 판례를 참고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범인 검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성희 chef@donga.com·이소연 기자